< 캄보디아 톤레샵에서>
이내 저무는 호수 변에 수상 가옥이 드러난다.
그 수상 가옥을 배경으로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가 눌려진다.
하지만 수상가옥이 근거리에 들어오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들 마음은 저릿해져 온다.
아... 어떻게 저 곳에서 살 수 있는 걸까...
이러한 인식이 조금 전 까지의 낭만적 감상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일몰을 제대로 감상하라고 데리고 간 수상 카페에서 바라 본 수상 가옥과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안쓰러워 보였다.
커다란 뱀을 목에 휘감은 채 사진 촬영을 해 주며 1달러를 외치는 소년들,
조그만 양푼에 앉아 양팔로 노를 저으며 배에 다가서서 1달러를 외치는 소녀들,
갓난 아이를 업고 우리가 탄 배에 기대어 1달러를 외치는 엄마들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선명하게 우리에게 다가선다.
게다가 우리는 전망 좋은 곳 배의 높은 곳 망루에 올라 그 모습을 하이 앵글로 바라본다.
마음씨 좋은 어느 외국인이 1달러를 적선한다고 한 들 그 아이들의 삶이 근본적으로는 달라지지 않는 법.
그래서 종교 단체와 시민단체를 통한 교육 봉사와 건축 봉사 같은 것이 더욱 의미있는 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랑이에게 대학교 봉사할동으로 이 곳에 다시 올 의향이 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있는 친구의 상수도 설치 봉사는 뜻 깊은 것이구나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톤레 샵 호수위로 맑간 해가 붉게 물들며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캄보디아 어린 아이들의 맑은 눈빛처럼 순정의 빛깔로 태양은 지고 있다.
< 다시 방콕으로 오는 미니 밴에서>
가격, 시간, 자유 여행의 모험정신...
이러한 것들을 종합 비교 분석을 마친 후에 우리는 11시 30분에 정확히 출발한다는 ‘미니 밴’을 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향후 어떤 일이 생길 지라도 불평하지 않고 즐기기로 다짐까지 했다.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한 건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교통경찰 단속에 걸렸는데, 10여 분을 정차해 있다가 무슨 일인지 경찰서까지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끌려갔다.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하는 미니 밴 기사 아저씨는 아무 설명도 없이 경찰서로 끌려 들어가더니 함흥차사이다.
30여분이 지났을까... 슬슬 짜증도 나고 답답해진다.
즐기기로 했지만 도무지 이 시츄에이션이 즐겨지지 않는다.
급기야 나와 해랑이는 사태를 파악하러 경찰서 안까지 들어갔다.
우리를 발견한 태국 경찰들은 무지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하며 소파에 앉으라고 권한다.
“What’s wrong?”라고 물으면 “not long”이라고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우리가 가서 그랬는지 원래 일이 마무리 되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미니 밴은 바로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기사는 승객들에게 아무런 설명이나 사과도 없이 그냥 운전만 하고, 승객들도 별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대신 무지하게 밟기 시작한다. 속도기를 슬쩍 보니 130km 까지 밟는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과속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 전의 사태를 용서하려고 할 때 쯤, 미니 밴은 좌회전을 하더니
작은 마을로 들어가 조그만 정거장에 정차해 버린다.
승객이 탔는데도 출발을 안 한다. 또 다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기를 몇 번을 반복한다.
넉넉잡고 4시에 도착할 꺼라고 했던 예매 처 아저씨 이야기는 도저히 지켜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휴게소에서 이야기는 안통하고 시계를 가르키니 기사 아저씨는 정확히 6시를 짚는다.
6시 도착 예정이라고 가족에게 중간보고를 하자 파타야의 해변을 고대하고 있던 해랑이는 드디어 짜증 작렬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우리가 어디서 내려야 할 지를 전혀 모르고, 미니 밴 안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짜증과 답답함과 걱정스러움이라는 네가티브한 감정들이 종합 선물 세트처럼 밀려왔지만,
나와 아내는 이걸 즐겨야 한다며 애써 태연한 척 했다. 물론 딸들에게 전혀 안 먹혔다.
이 위기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해 준 건 ‘donuts’라는 닉네임을 가진 멋진 태국 아줌마였다.
우리가 지도를 펼치고 우리 숙소를 가르키며 여기를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냐고 물었더니,
내리는 곳과 갈아타야 할 차량과 노선까지 자세히 설명해 준다.
파타야에서 가 볼만한 곳도 추천해 준다.
여행을 좋아하는 자신은 2주전 서울을 여행했고, 오스트리아 남자랑 곧 재혼을 할 예정이라는
사적인 이야기까지 쾌활하게 털어 놓는다.
우리는 금새 친해졌고, 급기야 그녀는 우리를 숙소까지 직접 안내해 주고 오늘 밤 우리가 가고자 했던
‘카오프라 땀낙’까지 가이드 해 준다고 한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해랑이는 짜증 버전에서 유쾌 버전으로 급 변경되었고,
나는 이것이 자유 여행의 백미라고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서울 돌아오는 날 하노이 공항에서 >
하노이 공항은 우리나라 김해 공항 정도 수준인데, 우리는 여기서 13시간을 버텨야 한다.
최저가 티켓을 끊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공항에서의 하룻밤도 낭만일 줄 알았다.
나 역시 의자에 앉은 채 잠을 잘 수 없는 체질인데, 우리 딸들도 마찬가지이다.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우리 아내가 충분히 잘 수 있다고 우기는 바람에 그리 결정되었지만
막상 하노이 공항 로비에 앉아 잠 잘 대비를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행히 막내 딸 예랑이가 비행기에서 내릴 때 담요를 꼭 껴 안고 있는 바람에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사실 나도 그럴려고 했는데 앞에서 해랑이가 담요를 가지고 나가다 저지 당하는 바람에 나는 잽싸게 내려놓고 말았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께만 해도 호텔에서 우아하게 잠을 잤는데 오늘은 노숙이라니...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단단히 무장하고 로비 전체를 한바퀴 순회하니 철제 의자가 아닌 푹신한 시트의 의자가 4줄 보인다.
나는 그 중 3줄을 잽싸게 디귿자로 만들어 놓고 우리의 거처로 만든다.
해랑이는 비행기에서 가져 온 담요를 덮고 가방을 베개 삼아 눕더니 바로 잠들어 버린다.
하기사 여긴 쇼핑 할 곳도 마땅치 않고 그동안 제일 많이 돌아 다녔으니 그럴 만 했다.
나는 각종 소품을 이용해 막내 딸을 위한 잠자리도 마련해 주었다.
예랑이는 잠이 오지 않는다며 누워서 음악을 듣고 있었고, 아내와 나는 캔 맥주를 마시며 쓸쓸한 하노이 공항 청사 바깥을 바라본다.
처음에는 공항 청사 바깥 모습이 그런대로 분위기 있었는데, 우리 처지가 그래서 그런 지 점점 쓸쓸해 보였다.
잠 못 드는 나와 아내와 예랑이는 포커 놀이를 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던 예랑이도 어느 덧 잠이 들고 아내도 내 무릎에 발을 올려 놓은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얼른 입고 있던 겨울 외투를 아내에게 덮어 준다.
다소 추웠지만 아내가 곤히 잘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을 만 했다.
움찔거리면 깰 까봐 그 자세 그대로 고스란히 2시간의 시간이 흐른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로비에 가득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환승 비행기를 타고 갔는 지, 로비에는 몇몇 사람만 움크려 자고 있다.
하노이 공항, 새벽 세시경 나는 홀로 상념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