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터지고 산이란 곳을 처음 가보았다.
그동안 산이란 ‘돈 없는 남자, 못생긴 여자“가 가는 곳이란 선입관이 있어
나는 돈도 많고(?) 못생긴 여자는 싫어했기 때문에 주저했던 곳인데
눈덮힌 치악산을 처음 가보고 산의 매력에 슬슬 빠져들기 시작했다.
산악 동호회에 가입하여 매주 다니다 보니 우리나라 100대 산중 50곳을 가보게 되었다.
그런데 100개 산을 가보리라 했던 계획은 미완으로 남겨 두고 가보지 않은 산은 좀더
나이가 들면 가기로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고 산은 내 마음속 한 켠에 내려놓게 되었다.
내장사 옆 연못 위로 뻗어난 나무들의 단풍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수 많은 종류의 빨간색 단풍물이 떨어져 호숫물이 뻘겠고 내가 그림 속에 있는지 그림이
내 속에 있는지 순간 숨이 멈춰지는 그런 느낌이였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내가 개발한 “현지 하이킹”
자전거를 고속버스 짐칸에 싣고 목적지에 간 후 네다섯 시간 탄 후 다시
고속버스로 서울에 오는 것이다.
이는 고속터미널 옆에 살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 다행히도 반포터미널과
남부터미널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안면도, 강화도, 월곳, 부여낙화암, 시화호, 경주, 대부도, 목포, 완도 , 춘천....
이 기회에 가보고 싶었던 모든 곳을 가보리라 했던 계획은 춘천에서 접어야 했다.
의암호 근처 갓길에서 공중으로 솟구치며 넘어져 손목을 접질려 버린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비 자전거도로를 달린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나
그 위험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마음 속 다시는
올라오지 않을 곳에 내려 놓았다.
춘천의 어느 초등학교 벤치에 앉아 싸온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데
낙엽 한 장이 허공에서 수십 번 회전한 후 내 도시락 반찬위에 떨어졌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달리기
세 번 풀코스 도전에 두 번 완주하고 한번은 23키로 지점에서 포기했다.
정말 고통이다. 그런데 달리는 사람은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하는 이유가
항상 궁금했는데 내가 뛰어보니 두 가지 점이 상호 작용하는 것 같다.
첫째, (현실)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만 이길 수 있으며
둘째, (현재)고통이 없는 사람은 만들어서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고통의 경제학은 본인이 직접 경험해야 알 수 있는 학문이며
수요에 대한 공급탄력성이 커서
조금만 노력하면 실로 그 혜택은 기대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뛸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이 꽤 까다롭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며
달리기는 신체적 여건이 허락할 때 까지 내려놓지 않을 생각이다.
영어회화
8개월을 열심히 했다. 처음에는 미친 짓이라 생각했는데
8개월 정도 지나니 드디어 물이 끓기 시작한다. 외국인과 1:1로 대화해도
어색하기는 해도 두려움은 많이 없어졌다.
이것은 내려놓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 올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급작스럽게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일이 발생했다.
집근처 사는 박래순이 작년 4월 압구정동에 광운 골프아카데미를 개설하였던 것이다.
평상시 골프에 관심이 없었고 칠 계획도 없었던 나는 “친구따라 압구정간다”는 말로 상황을
합리화하며 자의 반 타의 반 등록을 하게 되었다.
퇴근 후 들리면 친구들도 있고, 같이 치다보니 경쟁심도 생기고
이왕 한 것 이 기회에 열심히 하자는 오기가 뒤늦게 발동하여
5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배우고 연습했다....
약속이 없는 날은 퇴근 후 세네 시간 하였는데
초보인 관계로 손가락은 다 까지고 연습과다로 근육에 이상이 생겨
물리치료까지 받았다.(초보자들이 거치는 과정이겠지요)
중간 중간 실력 점검을 해보니 108, 103, 106, 104.....정말 두자리 수가
난공 불락이다.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이 “두자리”였는데 (아이큐가 두자리 였다는 뒤늦은 생각?)
이다지도 두자리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말인가?...
정말 이놈의 골프를 누가 만들었나?
시간과 돈을 하염없이 빨아먹는 블랙홀이다.
서초동 국립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골프관련 서적 탐독하고
영풍문고 가서 골프 신간 다 읽고
골프관련 기사 오려서 스크랩 만들고
스크린 골프도 해보고
주머니에 바셀린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까진 손가락에 바르고....
(일을 이리 열심히 했으면........돈을 이리 열심히 벌었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괴감마저 든다)
어제 영하의 날씨에 실력 점검 기회가 갑자기 생겼다.
목표의식도 긴장감도 사전 연습도 모두 내려놓은 상태라
가진 것은 날씨가 좀 따듯해 졌으면 하는 소망밖에 없었다.
서원벨리.
발끝이 시려웠고 그린은 꽝꽝 얼어 있고 페어웨이는 곳곳에 눈이 있어
라운드 내내 빨간 공, 노란 공으로 쳤다.
그런데 정말 신기 했다.
버디......파......파......파.............
“92.....”
숫자가 믿어지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넘 좋아 보신탕 수육에 맥주에 소주 넣고 주는 대로
받아 먹었다. 맨 날 이런 기분으로 살았으면 좋겟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진 손가락이 갑자기 대견스럽게 보였다.
“감사합니다.......내려 놓으니 이리도 딴 것으로 채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끊임없이 무엇을 내려 놓아야 하는지 고민하며 살겠습니다.
저는 내려 놓기만 할테니 채워주시든 말든 그것은 당신의 몫입니다“
산을 내려 놓으니 자전거로 채워 주시고
자전거를 버리니
달리기로 채워 주시고
영어회화를 내려 놓으니
골프로 채워 주시고
목표를 내려 놓으니
새로운 기록을 주시고
.
.
.
이제 다음으로 내가 내려 놓을 것이 무엇인가
일요일 하루 조용히 생각하며 이 글을 써 봅니다.
내려 놓을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 하나 내려 놓은면 무엇으로 채워주실지 저도 정말 궁금합니다.
궁금증이 해소될 때 "도전과 더내려놓음"이란 제목으로 느낌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