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박상훈
작성일 : 2001/03/05 19:13
(1) 2001년 2월 26일(월) 12:00 프랑스 파리에서 초등학교 2학년인 박주환 군(박윤준의 외아들)이 학교에서 쓰러짐. 아침에 친구에게 "오늘은 기운이 없어"라고 말했다고 함. 그 날 점심시간에 공원에 산책을 가기 위하여 선생님이 주환이에게 옷을 두텁게 입으라고 하여 두터운 옷으로 갈아입던 중 쓰러짐.
12:30 박윤준이 연락을 받고 학교에 갔으나 의식이 없었고 16:00경 병원에 데려갔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음. 외상이나 독극물 등 의심할 만한 흔적은 전혀 없고, 평소의 건강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며 비만상태도 아니었음. 사망원인은 심장마비이고 그 선행원인은 밝혀지지 아니함. 이른바 "어린이(유아) 돌연사"로 추정됨. 옛날에는 청장년층에서만 돌연사 증후군이 나타났으나 요즘에는 유아나 어린이에게도 나타난다고 함.
(2) 2월 27일(화)부터 28일(수)까지 : 박윤준, 시신을 한국으로 운구하여 3월 2일(금) 삼성의료원에 빈소를 차린 후 3월 5일(월) 발인하기로 결정. 김원기가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림.
2월 28일(수)부터 3월 3일(토)까지 : 파리 현지경찰이 부검여부에 관한 검사의 지시를 받아야 된다고 하여 운구일자를 3월 4일(일)로 변경. 박상훈이 변경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림. 파리 현지에서는 외상흔적이나 약물중독 등 의심할 만한 사정이 없고 부모인 박윤준 부부가 부검을 원하지 아니하여 부검을 하지 않기로 검사가 결정. 시신의 운구에 필요한 사망증명서, 방부증명서 등의 서류를 받음. 이근덕 회장 동문들에게 전체메일 발송.
3월 3일(토) 파리 현지에서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 그리고 교회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 거행. 한국으로 출발.
(3) 3월 4일(일) 서울시각 15:50 대한항공 편으로 박윤준 부부와 딸이 김포공항에 도착. 대한항공에 근무하는 엄재동 동문과 따로 승용차를 가지고 간 김원기 동문, 그리고 박윤준이 근무하는 국세청 직원들이 박윤준 일행을 맞이함. 17:05경 약 1km 정도 떨어진 화물청사에서 시신을 인도받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장의사 차량으로 시신운구.
한편, 삼성의료원에는 박윤준 부모님과 친척들, 국세청 직원들이 영안실 18호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음. 18:00경 아내와 함께 도착해 보니 하민호 동문이 먼저 와 있었음. 잠시 후 시신도착. 영정 설치. 박윤준이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인도 아래 예배를 올림.
문상객들 조문 시작. 상주는 부모인 박윤준 부부. 국화꽃을 한송이 씩 영전에 바치고 분향, 묵념 후 상주에게 위로의 말씀. 장성원, 김동하, 이근덕, 김성희 동문 등이 속속 도착. 잠시 후 서강영 동문이 우신조기를 들고 도착. 그리고 황병하, 정우종, 최규운, 이태주, 김견, 이철순, 윤인섭, 김기호, 김득주, 김상준, 최병현 동문들이 도착. 몇 명 더 있었으나 지금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함.
지방에 근무하거나 아침 일찍 일이 있는 친구들이 먼저 일어남. 나는 아내와 함께 22:40경 몇 명의 친구들을 뒤에 두고 일어남. 그 후에 온 친구들은 누가 있는지 잘 모름.
(4) 3월 5일(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12:20경 하민호로부터 전화가 옴. 파리에서 받아온 사망증명서 원본과 그 번역본 가지고는 화장하는 데 문제가 있어서, 삼성의료원에 근무하는 동문의사의 사망진단서를 다시 받기 위하여 그 연락처를 물어왔음. 박동성 동문(삼성의료원 치과진료부 보존과)과 이경한 동문(삼성의료원 핵의학과)의 연락처를 알려주었음.
나도 13:10경 삼성의료원에 도착. 하민호가 두 사람과 연락을 하다가 잘 되지 않아서 포기하고 일정 때문에 먼저 떠난 상태였음. 그 때부터 서류와의 전쟁. 서류가 없으면 시신이 병원을 떠날 수도 없고 화장장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는 것임. 박윤준의 지인들이 나서서 삼성의료원 이 박사와 노량진 김 원장 두 분과 연락이 됨. 두 분 모두 프랑스에서 가져온 서류를 팩스로 받아본 후 서류를 작성해 줄 수 있다는 것임.
* 여기서 잠깐 사망진단서 관련 법의학 상식을 설명하면, 사망진단서는 환자가 살아있을 때부터 진찰하던 의사가 그 환자의 사망에 관하여 발급하는 증명서이고, 이미 죽은 상태에서 병원에 도착한 경우에는 사망진단서가 아니라 시체검안서를 발급해 줌. 참고로 동물이 죽으면 사체라 하고, 사람의 경우에는 시체라고 함.
** 사망진단서든 시체검안서든 모두 사망원인이 나타나야 하는데, 프랑스에서 받아온 사망확인서에는 사망원인이 나타나지 않음. 칼에 가슴을 찔린 경우를 예로 들면, 사망원인은 직접사인 심장마비, 선행사인 흉부자상, 중간사인 출혈성 쇼크 등으로 세분하여 기재됨.
*** 그리고 프랑스에서 받아온 의사의 진단서에는 법의학적 사고사 란에 yes로 체크되어 있어서 no로 체크될 것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돌연사 같은 경우에는 법의학적 사고사로 보는지, 또는 번역상의 오류가 있는지 하는 점도 문제가 됨.
한편, 한국의사의 시체검안서가 없더라도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 명의로 하여 사망원인을 심장마비로 기재한 확인서를 받아오면 화장을 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고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에 연락을 함.
그리고 일산에서 한마음내과를 개업하고 있는 김경태 동문에게 전화하였더니 김경태 동문이 팩스로 프랑스에서 가져온 사망증명서 등 관련서류를 보내주면 시체검안서를 발급해 줄 수 있는지 대답해 주겠다고 하였음. 그러다가 이 박사, 김 원장 두 분으로부터 시체검안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김경태 동문에게 해결되었다고 전화하였음. 이 자리를 빌어서 김경태 동문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함.
예배를 마치고 이 박사, 김 원장 두 분의 시체검안서와 대사관의 확인서를 기다리던 중 시신을 운구한 관을 해체하고 새로운 관에 입관하여 끈으로 결관한 후 캐딜락 장의차에 실어 놓음.
이 과정을 박윤준과 내가 함께 지켜 보았는데, 고 박주환 군의 상태는 인형을 안고서 잠든 것처럼 평화로운 상태로, 마치 독이 든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잠시 잠들어 있던 백설공주와 같았음.
시체검안서와 확인서 중 아무 것이나 먼저 도착하면 출발할 수 있는 상태에서, 2반 대표 정우종 동문이 국세청 직원 3명을 태우고서 벽제 화장장으로 먼저 출발함. 임무는 16:20으로 예약되어 있는 시각에 맞추어 사람들이 먼저 도착한 후 시신을 기다리는 시간을 버는 일. 요즘 구조조정이 한창인 때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정우종 동문에게 박수를...
결국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대사관 확인서. 이 확인서를 가지고 시신출발이 허용됨. 15:20 삼성의료원 출발. 원래 1시간 30분 걸리는 거리를 1시간에 주파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장의차 행렬 출발. 나는 최규운 동문을 태우고 내 승용차로 출발.
16:20 벽제 화장장. 대사관 확인서로 절차를 마치고 시신운구. 13번 화로에서 화장 시작. 어른의 경우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므로 어린이는 1시간 30분 정도로 예상. 화장이 끝나면 뼈를 빻아서 분골로 만든 후 유해함에 담아가지고 일산 정발산에 가서 산에다 뿌려 줄 예정임. 원래 롯데월드에 뿌릴 수 없는지 신청했으나 허가되지 아니함. 정우종, 최규운 동문과 나는 여기까지 보고서 각자의 직장으로 감.
* 우신조기는 2반대표인 정우종이 가지고 감.
(5)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데...
아, 백설공주처럼 누워있던 아이를 어떻게든 다시 살릴 수만 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