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 투표하지 않았다. 정문준(국민통합21)과 김창현(민주노동당) 둘 중에서 누굴 찍어야 할지 정하지도 못했고, 열린우리당 후보는 누군지도 몰라 신경질이 났다. 열린우리당은 아예 포기했단 말인가? 선거 운동하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 이건 보나마나 또 정몽준이 될 텐데 싶어서 아예 선거운동을 포기한 것인가? 난 이번 총선에 울산 동구에서 후보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공탁금 삼천만원이 없어서 꿈을 접어야 했다. 게다가 득표율 30% 이내에 들지 못하면 공탁금을 되돌려 받지 못한다니 돈이 아깝기도 했다.
오늘 아침 집사람이 선거인명부를 건네주면서 투표를 하라고 했지만 난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은 집사람과 오늘 뭘 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신불산에 다녀오고 싶었다. 요즘 중년이 되면서 건강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터라 등산도 하면서 가장으로서의 의무도 다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필 오늘은 제4 남전도회에서 아침 9시 반부터 교회 봉사를 하기로 정한 날이었다. 난 명색이 총무라 빠질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가까이에 사는 이동주 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차를 타고 함께 교회에 가기로 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시내 울산대공원에서 수영을 하기로 했다. 나도 거기에 가고 싶었다.
9시 20분에 이동주 집사 집으로 걸어갔다. 거기서 차를 타고 교회에 가면 9시 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이 집사 집에 가니 지영(미포초등학교 2년)이는 음악을 듣느라 날 본체만체 했고, 은영(4살)이가 날 반겼다. 은영이는 아이스크림을 보자 엄마에게 날 가리키며 아이스크림을 준 사람이라며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한다. 다음에 올 때도 아이스크림을 사와야 할 것 같다. 잠시 후 이 집사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양 집사도 따라 나왔다. 이 집사가 투표하러 간다면서 내게 묻는다.
“배 집사님은 투표하셨어요?”
“전 투표 않기로 했습니다.”
“왜요?”
“누굴 찍어야 할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투표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고 싶어요.”
“경찰 아저씨가 잡으러 올 텐데.”
그들의 투표소인 만세대 경로당으로 올라가니 동네 사람들 십 여명이 줄지어있었다. 이 집사와 양 집사는 줄 뒤에 가서 섰고 난 이만치 떨어져 나무 그늘에서 기다렸다. 한 십 여분 걸린 것 같았다. 내 투표소는 여기가 아니라 길 건너 화정동 동사무소였기 때문에 기다리면서 별 후회는 없었으나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이 가슴 아팠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하러 가는데 겨우 이 정도의 가슴 아픈 일쯤은 견딜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나오더니 다시 집으로 걸어갔다. 난 또 따라갔다. 이 집사가 양 집사에게 휴대폰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우린 이 집사의 애마 스타렉스에 올라탔다. 금방 나올 것 같던 양 집사가 또 뜸을 들이고 나오지 않았다. 난 애가 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난 요즘 기특하게도 불행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 습관을 들였다. 남들은 의아해 할지 모르지만 난 참 불행한 사람이다. 내게 닥쳐오는 불행들을 주목하고 있으면 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승진도 안되고, 국회의원에 나갈 돈도 없고, 여태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되고(난 빨리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다), 애는 셋 밖에 안되고(최소한 다섯은 있어야 하는데 난 이제 불능이다), 등등. 그래서 난 아예 불행을 우습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엊저녁 예배에서도 신 목사님은 시련을 이기라고 하셨다.
너희가 여가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야고보 1:2,3)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1:6,7)
조금 뒤 양 집사가 핸드폰을 들고 나왔고 우린 교회로 출발할 수 있었다. 교회로 가니 역시 회장인 최호기 집사를 비롯해 임종헌 집사와 김진옥 집사가 와 있었다. 난 늦어서 미안했지만 우리 구역이 3명이나 되어서 기죽지 않았다. 조금 뒤 이상학 집사의 차가 교회 정문에 나타났다. 그의 어부인이 운전석에 앉으면서 왜 하필 이런 날 교회 봉사를 하냐면서 우리를 향해 볼멘 소리를 했다. 그래요, 다 압니다. 우리도 이러고 싶지 않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하나님 일을 하자는데. 더구나 오늘 모이자고 한 건 당신 남편 이상학 집삽니다. 물론 이 말을 발설하진 않고 생각만 했다. 이 말을 했다간 중량감 나는 두 부부의 두발차기가 언제 날아올지 모른다.
4남 회원 6명이 모여 교회 봉사를 시작했다. 오늘의 과제는 교회 꽃밭에 꽃 심기였다. 꽃을 심어보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난 여섯 살 때부터 도시에서만 자라 시골콤플렉스가 있다. 나무,꽃,풀 이름들을 잘 모른다. 시골에서 자라 자연과 친숙한 사람들을 만나면 기가 죽는다. 내 집사람만해도 모르는 풀,나무,꽃이 없다. 촌뜨기라고 놀리지만 속으론 부럽다. 촌 사람들의 감성과 그들이 자연과 나누었을 교감이 부러운 것이다.
며칠 전 교회 담장을 새로 놓느라 꽃밭에는 나무만 있었고 맨 흙이었다. 그런데 나무에 전선이 어지럽게 걸려있었고 거기엔 꼬마 전구들이 붙어있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걸어놓았던 전구 장식이었다. 백경훈 집사가 그 추운 12월초의 어느날 이틀에 걸쳐 나무에 걸어놓았던 것이었는데 아마 철거하면서 잔해가 남은 거라고 생각했다. 이 동주 집사와 난 보기 싫은 전선들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머지 4명은 보이지 않았다. 전선은 나무 가지에 테이프로 견고하게 묶여 있었다. 사찰 집사님 집에 가서 리빠를 빌려와 전선을 끊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굵은 전선이 나무에 칭칭 매어있고 더구나 나무를 건너지르며 이어져있었다. 백 집사가 사다리를 타고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테이프로 매던 생각이 났다. 이 집사와 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금년 크리스마스 때 또 쓰려고 놔둔 거 아닙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미 시작한 일인데 다 끊읍시다.”
이 집사가 나뭇가지를 밟고 꼭대기로 올라가 리빠로 전선을 다 끊어냈다. 정말 괜한 짓을 하는 것 같아 황당했다. 차라리 오늘 오지 않았더라면 전선이 잘려나가지 않았을 텐데. 백 집사에게 전화해서 확인해 보고도 싶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전선을 다 끊어내고 나서야 나머지 일행이 꽃 모종 세 판을 들고 돌아왔다. 주먹만한 플라스틱비닐 용기에 담긴 주먹만한 꽃이었다. 모두 72개였고 하나에 1,000원씩 모두 72,000원이었으나 김진옥 집사가 아는 꽃집이라 60,000원에 사왔다고 했다. 호미로 땅을 파내고 이름 모를 꽃들을 심었다. 내가 아는 꽃은 하나도 없었다. 국화나 장미, 해바라기 같은 거라면 알았겠지만 그런 꽃은 아니었다. 꽃을 다 심은 뒤에는 꽃씨를 또 뿌렸다. 봉투에 맨드라미, 과꽃, 나팔꽃, 분꽃 등의 이름이 쓰여있었고 씨 모양이 다 달랐다. 쥐똥처럼 생긴 것도 있고 좁쌀 같은 것, 거의 가루처럼 작은 것도 있었다. 모양이 다 틀리다니 신기했다. 다 뿌리고 나서 물을 주고 있자 사찰이신 강 집사님(여)이 나오셔서 매실 주스 한잔씩을 나눠 주셨다. 노동 뒤에 마시는 한잔의 주스는 꿀맛이었다. 아, 노동은 신선하여라.
마치고 나니 거의 12시가 다 되었고 우린 모처럼의 휴일에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이미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포기하고 있었다. 미포초등학교에서 족구를 했다. 자장면 내기였는데 내가 있는 팀이 졌다. 난 햇빛을 가린다고 모자를 쓰고 나갔는데 나 혼자만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모자는 지난번 금강산에 갔다가 거금 28달러인가를 주고 산 비싼 모자였다. 그래서 헤딩을 해야 되는 순간에도 발로 처리하느라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임 집사와 내가 만원씩 내서 운동장 등나무 밑에서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이 상학 집사는 배가 아프다고 손으로 배를 쓸면서도 자장면을 국물도 남기지 않고 다 먹고는 군 만두까지 먹었다. 그러니 암만 탁구를 쳐도 배가 안 들어가지. 쯧쯧.
우린 파란 등나무 꽃 아래서 즐거운 잡담을 나누면서 배를 꺼뜨렸다. 한가한 잡담은 정말 즐거웠다. 여자들이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난 군 입대 전에 일주일간 권투 도장을 다녔는데 그때 배운 권투 포즈를 취하면서 권투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말했다. 최호기 집사는 못 믿겠다는 듯 훅이며 잽도 넣고 원 투 스트레이트도 넣어보라고 했는데 나는 보기 좋게 시범을 보였다. 그러자 다들 죽는다고 웃었다. 나는 정말 한 사람을 불러내 시범 경기라도 해서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상학 집사는 어릴 적 동네에서 코흘리개들한테 글러브 끼워주고 싸움 시킨 얘기도 했다. 난 권투가 얼마나 힘든 운동인지 설명해 주고 싶었다.
“권투 도장에 나간 지 일 주일 되니까 사범이 링에 올라가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올라갔더니 도장에 나온 지 3개월 되는 사람하고 3라운드 뛰라는 거야. 그래서 뛰었지. 얼마 안되어 펀치를 한 대 맞았는데 순간 정신이 팍 나가더라고. 아찔했지. 약이 올라서 반격을 노렸지. 왼손 잽을 넣는 척 하면서 오른손 스트레이트로 그의 안면을 갈겼지. 그는 나보다 더 충격을 받은 거 같았어. 두 팔을 벌리고 저만치 나가 떨어졌지.” 난 두 팔을 벌리고 그가 나가 떨어지는 모습을 실연해보였다. 그러자 또 다들 좋다고 웃었다.
“그런데 마침 사범이 손님하고 얘기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 두 선수는 타협을 했지. 그만하고 내려가자고. 그리고 링을 내려왔어. 3분 1라운드 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야.”
그러자 다들 그렇다고 동의했다. 1라운드만 뛰어도 손을 못 올린다고 했다. 그들도 권투 글러브를 한 번씩 껴본 눈치들이었다. 다들 한 주먹들 있구먼. 나만 권투 한 줄 알았는데 조심해야겠다.
그냥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웠다. 우린 어느새 진한 전우애 비슷한 걸 공유하고 있었다. 이상학 집사가 탁구 치러 가자고 했다. 난 아까부터 당구를 치고 싶었는데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당구는 아무래도 거룩한 성도들이 하기엔 찜찜한 무엇이 있다. 이상학 집사의 제의대로 울산과학대학 앞에 있는 탁구장에 갔다. 울산시 탁구대표가 운영하는 곳이었고 그 대표가 탁구를 치고 있었다. 그는 삼십 중반이었는데도 몸매는 날렵한 고등학생처럼 군살이 없었다. 오죽하면 아랫배의 뱃살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물찬 제비였다. 그가 탁구를 위해 쏟는 땀방울의 양을 알 것 같아서 숙연한 느낌마저 들었다.
탁구라면 이상학 집사가 꽉 잡고 있어서 그는 울산시 여자탁구대표 선수와 시합을 했다. 결과는 3:2로 그의 승이었고 그는 아주 좋아했다. 탁구장을 나와 우리는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난 이동주 집사와 함께 돌아오면서 당구 생각이 났다. 이 집사는 간밤에 새벽 4시까지 당구장에서 내기 당구를 쳐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제의를 받아들여 동울산 시장 안에 있는 그의 단골 당구장으로 갔다.
당구장에 들어가니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담배 연기가 여기저기서 올라왔다. 이 집사에게 시합을 걸어오는 팀이 있어서 우린 2:2로 당구비 내기 시합을 했다. 난 원래 150이었는데 120으로 속였다. 그런데 내가 처음 좀 잘 치자 상대방이 너무 잘 친다고 딴지를 걸어왔다. 난 속인 것을 들킬 까봐 잘 칠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1시간 동안의 혈투 끝에 이 집사가 가락구를 성공시켜 이겼다. 그들을 돌려보내고 나서 우리 둘이 1:1로 붙었다. 이 집사가 나더러 120을 놓으라고 했다. 한 시간 동안 쳤는데 내가 이겼고 그가 당구비 7,500원을 냈다. 난 태어나서 아마도 처음으로 2시간 동안 공짜로 당구를 치고 나왔다. 그러나 이 집사도 돈이 아깝진 않을 것이다. 이 집사는 아까 나와 같이 진 쪽의 족구팀이었고 자장면 값은 임 집사와 내가 냈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참 오늘 하루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니 아직 가족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 저녁을 차려 먹기가 싫었다.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내 나온 김에 외식 좀 하고 들어갈 테니 밥 차려 먹어요. 그래. (너희들끼리 잘 먹어라. - 이 말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