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플린총장,"한국인들, 황교수 사태에 너무 괴로워 말라"
[노컷뉴스 2006.01.10 06:30:10]
"한국 사람들은 서울로 가야한다는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KAIST 교수와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사회와 어울리지 못하는 KAIST는 진정한 지역의 구성원이 될 수 없기에 앞으로 지역과의 연계방안을 찾아가겠습니다."올해로 취임 3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로버트 러플린(Robert B. Laughlin. 56) KAIST(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을 최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바로 직전 학교 임직원들과의 마라톤 회의를 하느라 러플린 총장은 다소 피곤해보였다. 거의 30분 단위로 스케쥴이 잡혀 있을 정도로 바쁜 가운데 러플린 총장은 다시 기운을 차리며, 기자에게 "한국의 추운 겨울 날씨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며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대담은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의 KAIST 역할과 지역과의 연계 방안 등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러플린 총장은 "KAIST가 지역과 연계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KAIST와 지역사회의 연계수준은 아주 안좋은 상황(Terrible)이라고 자평했다.
학교와 지역 공동체와의 공유문화가 없는 현실에서 러플린 총장은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언젠가는 서울에 돌아가야 한다는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다"라며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바로 KAIST가 지역과의 교류를 잘 해내지 못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또, 러플린 총장은 KAIST가 지역사회와 밀접하게 연계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엘리트 집단의식'때문이라고 단정지었다. 일종의 사회계층간의 의식이 확고해 지역 주민들이나 일반 구성원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러플린 총장은 "KAIST 뿐만 아니라 엘리트 집단으로 이뤄진 해외 명문대학들 역시 대부분 지역에 친근하지 않다"면서 "바로 이에 대한 처방을 내리기 어렵지만 KAIST는 지역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을 대전 본원과 확실하게 분리시켰다고 밝혔다.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학장을 부총장으로 승격시키고 본원에서 모든 자금지원 등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대덕에 있는 KAIST 엔지니어 교수는 서울 캠퍼스로 갈 수 없게 됐다.
특히 러플린 총장은 지역과의 실질적인 동반관계를 위해 KAIST 벤처창업을 지역에 어느 기관보다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법적인 문제가 보완된다면 KAIST가 '벤처 스핀오프'는 가장 잘 해낼 자신이 있다"면서 "대덕특구의 벤처생태계는 KAIST가 핵심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러플린 총장은 이익 분배 등 스핀오프에 대한 법, 제도적인 부분을 보완해야만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앞으로 러플린 총장은 취임 당시의 각오처럼 한국의 역동성 있는 과학인재를 육성해 미국과 대등한 수준을 만들어 보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황교수 사태에 너무 화내거나 괴로워할 필요 없다"러플린 총장은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사건과 관련, "한국 사람들은 황우석 교수의 사태에 대한 너무 화를 내거나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왜냐하면 황 교수 또한 나쁜 사람이거나 슈퍼맨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황교수가 한 연구는 훌륭한 일이고 성과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생각하다 한순간에 영웅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위치가 바뀌어서 사람들이 굉장히 화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실험 자체가 조작이냐 허위성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흥분할 필요가 없다. 실험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고, 당연히 검사해서 확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플린 총장은 "실험에 대해서는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 과정을 통해 황 교수가 맞는다면 그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고 황 교수의 실험이 만약 조작이라고 판명돼도 과학계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신뢰는 크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만 황 교수 자신만 큰 수모를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대담의 전체 내용이다.
대담: 김요셉 대덕넷 취재팀장 / 정리: 문정선 대덕넷 기자▶ KAIST 총장으로 계시면서 한국 과학계가 어떤지 느낀 점이 있다면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 과학계에 대한 총평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 과학계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국 과학계가 잘하는 점도 많은데 홍보를 제대로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 KAIST의 행보를 보면 지역과의 연계성이 없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그런 지적은 알고 있어요. 한국인들은 프랑스인들과 생각하는 게 비슷합니다. 파리는 메인시티고 나머지는 별로 비중 있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덩어리로 인식합니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지방분권이 잘된 나라와 같이 생각하지 않아요. KAIST 교수들도 국가적 배경 이외에 서울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KAIST 교수의 자제들이 대부분 서울대생들이고, KAIST 역시 원래 서울 홍릉에 있다가 대전에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라 밖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이스라엘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듯이 한국인들도 서울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부분은 감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처방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에 있는 교수들이 대전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갑자기 대전에 내려왔기 때문에 올라가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정 부분 해결한 것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서울에 있는 테크노경영대학원을 완전하게 KAIST와 분리시켰어요. 이전엔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의 학장이었는데 지금은 부총장으로 승격시키고 본원의 지원도 안 하기로 했어요. 이 때문에 엔지니어로 있는 교수는 서울로 갈 수 없죠. 서울의 홍릉 캠퍼스를 팔 수 있다면 팔고 싶습니다.
▶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려면 교수들이 활발하게 교류해야 하는데 만남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한 생각은요.- 따로 처방은 없습니다. 사회계층간의 문제라고 봅니다. 많은 교수들이 우월의식을 갖고 있어요. 아무도 말은 하지 않지만 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도시의 명문학교를 어느 날 갑자기 도시 밖으로 이전시켰을 때 느끼는 사람들의 마인드와 비슷합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이런 상황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엘리트들이 많이 모인 명문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학도 지역 주민들에게 그렇게 친근하지 않습니다. 다른 대학도 친근하지 않고요. 엘리트 명문대는 다른 사람들과 차원이 다른 소수의 선택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통해 유지해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현상이 KAIST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습니다. 시간을 두고 지역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겠습니다.
▶ 대덕특구가 출범하면서 KAIST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부분과 계획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 물론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덕특구와 KAIST의 역할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바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입니다. KAIST는 현재 공공부문에 집중하고 있지만 실제 경제의 흐름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민간부문이예요. 이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간부문에 경제의 흐름이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스핀오프(SpinOff)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예요. 한국 정부 자체가 이익 분배에 대해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지 않아서죠. 그래서 저는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제대로 스핀오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법 등 제도적인 부분이 보완돼야 스핀오프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뜻인지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지 않은 점을 바꾸고 싶다는 말입니다. 정부의 세금을 받은 사람이 기술을 개발했을 때 정부와 개발자 중 누구에게 소유권(Ownership)이 있는 것인지요? 예를 들어 제가 국민의 세금인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가 소유권을 갖고 물건을 만들어 팔면 돈이 생겨요. 또 소유권이 정부에 있을 때도 특허권이나 물건을 팔았을 때 이득이 생깁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좋은 이상적 모델은 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이 공동으로 물건 만들어 팔고 이견없이 알맞게 이득을 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애매모호합니다. 정부에서는 여기에 대해 확실한 규정을 만들어놓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세금을 낭비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합니다.
▶ 확실한 규정이 있다면 KAIST도 스핀오프에 적극 나설 생각이 있습니까. - 네. 그렇습니다. 지금 스핀오프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덕특구는 이익에 대한 법적 정의를 새로 하는 것 보다는 새로 들어온 입주기업이나 기관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는 것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KAIST는 대덕에서 스핀오프 요구에 대해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유일한 학교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기관은 정부에 대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죠. 정권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다른 나라도 분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비교해 KAIST는 정권이 바뀐다 해도 오랫동안 사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황 교수 실험 검증해야...과학계 신뢰 큰 하락 없을 것▶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파문으로 인해 한국 과학계에 미칠 영향이 어떤지 외국인의 입장에서 말해준다면요.- 한국 사람들은 황우석 교수의 사태에 대한 너무 화를 내거나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황 교수 또한 나쁜 사람이거나 슈퍼맨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한 연구는 훌륭한 일이고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생각해요. 한순간에 영웅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위치가 바뀌어서 사람들이 굉장히 화를 내고 있습니다.
목적을 도달하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아픔도 있을 수 있고 자기를 반대하려는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눈에 보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연구원의 난자를 제공받아 쓴 것과 실험을 제대로 못한 점입니다.
연구원 난자를 이용한 것은 한국의 법적인 문제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직까지 법으로는 연구원 난자를 써도 되는지 안 그런지 명확한 규정이 없다. 사람들은 법 규정이 없으면 자기가 필요한데로 이용하려는 심리가 있어요. 황 교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불법인지 합법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법 체제가 미비했어요.
이런 문제 때문에 저도 예전에 연구할 때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연구원은 연구 과정에서 합법인지 불법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법 체제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당신의 판단이 틀렸다’라고 비판을 받았습니다.
실험 자체가 조작이냐 허위성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흥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험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고, 당연히 검사해서 확증해야 합니다. 이 케이스가 다른 과학적 실험과 다른 것은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는 겁니다. 이런 일이 과학계에서는 거의 없어요. 흔하지 않은 케이스라는 거죠.
실험에 대해서는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황 교수가 맞는다면 그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나 과학계는 많은 조작이 이뤄져 왔습니다. 황 교수의 실험이 만약 조작이라고 판명돼도 과학계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신뢰는 크게 하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황 교수 자신만 큰 수모를 겪을 거예요. 그러나 결과가 나오지 않아 뭐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 앞으로 총장 임기가 2년이 남아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을 수 있을런지요.- KAIST의 예산안이 확정될 때까지는 자세한 말씀은 드리지 못합니다. 제가 (정부측에) 요구한 예산이 올 때까지는 '노 코멘트'입니다.
▶ KAIST 총장으로 임명되면서 '한국의 과학도들을 세계적인 리더로 키워 미국을 위협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계획이 유효합니까.- 저는 당시 한국의 역동성 있는 과학인재를 육성해 미국과 대등한 수준을 만들어 보겠다는 뜻에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물론 그 꿈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제가 한국에 온 이유는 제가 미국이 싫어 떠난 것이 아니고,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왔습니다. 한국 정부의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꿈이 무엇인지요.- (한참 고민 후) 저의 궁극적인 꿈은 제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을 만큼 살아있는 동안 좋은 일 많이 하는 것입니다. 저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매우 유감이다’라며 진정으로 슬퍼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대담: 김요셉 대덕넷 취재팀장 / 정리: 문정선 대덕넷 기자/노컷뉴스 제휴사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