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노무현을 '존경'하지 마라
번호 149302 글쓴이 평미레 (jc7202) 조회 3294 점수 835 등록일 2006년9월10일 13시16분 대문추천 12 정책 1
지난 8월25일 정몽준 무소속 의원은 "정부는 많은 국민들이 존경하지도 않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내세우"며 작통권 환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노태우를 가리켜 "군인 출신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다니 ... 후보 시절 큰 실수를 했다"며 다그쳤다.
한편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은 9월7일 "바보 노무현이 그립다"고 했다. "미래에 존경받을 대통령이 아니라 지금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면서 노무현 대통령더러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주문했다.
정몽준 김정권 두 의원은 공통점이 거의 없다. 연배도 다르고 당도 다르니 생각이나 행동이 같을 리도 없겠다. 하지만 공통점이 한가지 보이긴 한다. 그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척 한다는 점이다.
가까울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던 정몽준 의원과 노무현 대통령이 가까웠던 것은 후보 단일화 때문이었다. 그때 그들은 자주 접촉해야 했고 포장마차에서 '러브 샷'까지 했었다. 그때 정몽준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을 알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김정권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후배'를 자처했다. 연고주의 냄새가 풍기기는 하지만 자기 딴에는 가까움을 표시하고 싶었나 보다. 그는 또 노무현 대통령이 자기 '정신적 이정표'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니 김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좀 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가깝게 안다'고 운을 뗀 건 복선이다. 자기가 아니까 하는 말이지만 '노무현은 나쁘다'는 것이다. 친한 척 하다가 뒷통수 치는 전략이다. 정몽준은 '전작권 환수 반대' 때문이고 김정권은 '코드 인사' 타령이다. 한나라당이든 무소속이든 모든 길은 '노무현 탓'으로 통한다. 예외 없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난 정몽준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특히 정몽준이 노태우더러 "군인 출신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다니 ... 큰 실수"라고 다그치는 걸 보니 코메디가 따로 없다.
베트남에 파병됐던 한국군 지도부가 미군 작통권 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단 말인가? 험악한 사태 만들어 가며 대립한 끝에 한국군은 독자 작통권을 가졌다. 덕분에 지금까지 베트남 참전한 한국군은 형식적으로나마 '미국 용병' 소리 듣지 않는다.
이라크 파병도 마찬가지다. 지역만 분담했을 뿐이다. 해당 지역 작통권은 한국군에게 있다. 군인들은 그런 거다. 독자 작통권을 좋아하지 남의 작통권에 들어가 작전 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시키는 대로 쌈하고 돈 받는 용병들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용병 노릇하면 전투 경험 못 쌓는다. 그건 몸빵일 뿐이지 능동적인 작전(作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몽준은 "군인 출신이 작전권 환수를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우긴다. 뭘 알고나 하는 얘긴지 모르겠다. 그런 건 육군 병장만 돼도 안다. 내 소대장 출타 중이라고 옆 중대 소대장 작업지시 받으라고 하면 신경질 나는 법이다. 그런데 나라의 작통권 환수를 반대하면서 "군인 출신이..."를 빌미 삼다니. 정몽준은 군대나 갔다 왔는지 모르겠다.
웃기는 건 김정권 의원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더러 "지금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란다. 김정권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한국에는 '재임 중 존경받는 대통령'이 많았다. 이승만부터 시작해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거쳐 김영삼에 이르기까지 다 재임 중에 존경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도 존경받는가? 그들은 재임 중에'만' 존경받던 사람들이다.
반대로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중 존경이라고는 눈꼽만치도 받아보질 못했다. 특히 수구들은 주구장창 '빨갱이'라고 씹어댔고 그의 정책은 사사건건 발목 잡았다. 하지만 그는 임기를 마치고 나서 점점 더 존경받고 있다. 아마 그에 대한 존경은 '통일 기념일'에 최고에 달할 것이다. 나래도 박정희/전두환 같은 인간보다 김대중 대통령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김정권 의원은 '존경'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그러는 걸까? 국어사전은 '존경'을 "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함"이라고 했는데 턱없이 부족한 풀이다. '공경'을 찾아보니 "공손히 받들어 모심"으로 돼 있다. 그러면 '존경'은 "받들어 모심"이 되는데 이건 뻥이다. 존(尊)의 뜻은 들어가 있지만 경(敬)의 내용이 쏙 빠져있다.
존(尊)은 '높이 받들다'는 뜻이다. 손(표기 안됨)으로 잘 익은 술(酋)을 받들어 올리는 모양이다. 제사에서 술 올리는 자세다. 조상에게 드리는 술은 잘 익은 술을 써야 할뿐 아니라 술병이나 술잔을 머리 위로 올려 따르는 법이다. 이게 바로 존(尊)의 뜻이다.
경(敬)은 흔히 '공경 경(敬)'이라고 하는데 웃기는 뜻풀이다 '개는 똥개'라고 푸는 격이다. '누렁개'는 개가 아니란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경'은 '절제와 훈련'이다. '부족할 구(苟)'와 '칠 복(표기안됨)'의 합자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몽둥이로 때려가며 부족한 것을 채워 나간다는 뜻이다. 퇴계 선생께서 수신책으로 가르치신 게 바로 이런 '경'이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 보면 '오푸스 데이(Opus Dei)' 회원 중에 허벅지에 가시철사를 묶어 매고 자학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 몸에 상처를 내가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잊지 않으려고 그랬다고 한다. (이건 실제 이야기다.) 그런 극기와 훈련을 통해 자신을 그리스도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경(敬)이다.
그래서 '존경'이란 '높이고 훈련하다'는 뜻이다. 뭔 말인가? 상대방을 높여서 기준으로 삼고 거기에 못 미치는 자신을 몽둥이로 때려가며 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말이다. 이게 바로 '존경'의 원래 뜻이다.
그러니 정몽준 의원은 '국민이 노태우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불만 가질 필요 없다. 노태우가 어디 그럴만한 인물인가? 법적으로는 반란 수괴로 판결난 사람이다. 그가 대통령직을 맡았던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에 작통권 환수에 관한 공약이나 정책을 인정하는 것 뿐이다. 그건 노태우였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이었기에 존중하는 것뿐이다. 그게 '노태우 존경'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김정권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을 '정신적 이정표'로 삼았다면 끝까지 그럴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진짜로 '존경'한다면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건방떨 일이 아니다. 자신을 몽둥이로 후려쳐 가면서 노무현 대통령 수준이 되려고 노력할 일이다. 아예 처음부터 '정신적 이정표' 이야기를 꺼내질 말던가.
"미래에 존경받을 대통령이 아니라 지금 존경받을 수 있는 대통령이 돼달라"는 주문도 생뚱맞다. 노태우는 대통령 재임 시 존경 많이 받았다. 전두환이나 박정희나 이승만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노태우 존경하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 갔는가? 세상일이 그런 거다. 권력 있을 때는 '존경'한다고 너스레 떨다가도 끈 떨어지면 내버리는 게 세태다. 그건 절대로 진짜 '존경'이 아니다.
다행히도 지금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 씩이나 하는 사람들 별로 없다. 그를 사랑하거나 미워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좋아서 따른다.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가 싫어서 '노무현 탓' 부르댄다. 어느 쪽이든 '존경'과는 거리가 많다. 아직은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그의 정책이 진가를 나타내기 시작하면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 뿐 아니라 그를 미워하던 '노무현 탓 신드롬' 환자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재직 중에는 김대중 대통령 못 잡아 먹어 안달하던 사람들도 이제 와서는 그의 '햇볕정책'이 옳았다고 고개 주억거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되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름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일 것이다. 그 이후로는 '통일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김대중 대통령은 두고두고 존경받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박정희나 노태우가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궤적을 따르는 사람이다. 승산없는 걸 알면서도 부산에 출마할 때의 노무현만 '바보 노무현'이 아니다. '무식하네, 능력없네, 교양없네' 해 가며 별별 소릴 다 듣고 있는 지금도 그는 '바보 노무현'이다. 그러나 우공(愚公)이 산을 옮긴다. 바보 노무현은 한국 정치를 상식과 원칙의 시스템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재임 중에 무슨 소릴 들어도 상관없다. 그러니 정몽준이나 김정권 의원은 계속해서 노무현 대통령 탓이나 하고 있길 바란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고 싶다'는 속보이는 얘긴 꺼내지도 말아라. 그대들에겐 아직 때가 아니다.
ⓒ 평미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