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요 며칠간 김원기군과 소원하게 지냈다.
지나 놓고 생각하니
사람 사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고
의사소통 과정에서 서로 오해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너그러이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협량이 문제였다는 결론이다.
원기...미안하네.
지난 주의 일이다.
삼성동 공항터미널 갈 일이 생겨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고
간 김에 원기, 래순이 얼굴도 보고 싶은 생각에
원기에게 전화를 했다.
돌아온 답변은
장 끝나고 뭔 회의가 있긴 한데 하며
시간이 된다는 것도 아니고, 안된다는 것도 아니고
지극히 모호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나와 래순이가 먼저 만나고 있으면
자기는 회의 마치는대로 합류하겠다는 것이었고...
래순이와의 사전협의라는 절차는 생략했으나
일견 합리적 의사결정인 듯했다.
그래저래 전철을 타고 가는데
대학 동창넘한테서 시간되면 쏘주나 한잔 하자고 전화가 온다.
그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줄기차게 함께 퍼댄 술벗으로
선약이 있다는 내 답변에 무척이나 섭섭해 하는 눈치다.
어쨌거나 터미널에서 볼일 마치고
원기에게 전화하니
회의는 마쳤고 간단히 식사만 하고 갈테니
래순이 사무실에 가있으란다.
래순이 전화는 불통이나
레슨중이려니 신경은 안썼다.
퇴근시간에 길은 막히고
원기에게 시간은 벌어줘야 겠고...
해서 내린 결론은
삼성동에서 압구정동 래순이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봉은사 지나 오천주유소까진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아직 때는 8월이라 덥고 힘드네.
래순이 전화는 계속 불통이고...
그렇게 한시간 가까이 걷고 또 걸어 래순이네 도착했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아 놀라 물어보니
원장님은 쉬는 날이란다.
조또...땀범벅에 그 낙심천만함이란...
어쨌거나 급히 대책은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원기에게 전화하니
밥을 몇 그릇이나 퍼먹는지 아직도 식사중이란 답변에
지금 만나는 사람이
매우 중요한 사람들(VIP)이라는 상황설명까지 친절하게 덧붙인다.
뭐라? VIP?
그럼 난?
사실...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스테이터스에서 오는 자격지심이랄까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솟구쳐 오른다.
버러지 같은 넘...
그 순간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 전화했던 대학동창넘이나 만날까 생각도 했지만
버러지 아닌 소중한 친구를 땜빵 취급하는 듯하여
말았다.
캥기는게 있는지...그 후 몇차례 김원기군으로부터 전화는 왔었는데
인간으로서의 대접은 안했다는 기억이다.
그랬던 어제...
그 소중하다던 대학동창넘에게 전화했다.
상의할 일이 있으니 좀 보자 했더니
뭔가 좀 밍기적거리는 느낌이긴 했으나 약속은 성립되었고
시간 맞춰 전철 타고 약속장소로 가는데
전화가 왔다.
다른 친구와 만날 일이 생겨
오늘 약속은 이행이 힘들겠단다.
나이가 드니 요령만 느는지
생각 있으면 다같이 보는건 어떠냐는 립서비스도 곁들이며...
개별적으로 보던
이 넘 저 넘 다구리로 보던 상관은 없는데
순식간에 주객이 전도되는 프로세스에
입안이 말라온다.
알았다...담에 보자.
알고보니 그 넘도 버러지였다.
내가 그동안 세상을 잘못 살았는지
한동안 넋을 잃고 고뇌하다 얻은 깨우침
어차피 버러지 같은 세상
나도 버러지로 살면 되지!
서둘러 김원기군에게 문자부터 넣었다.
"그동안 반성 많이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