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23일이었다. 정확히 5년 전이었지.
당시 고 2인 아들이 간혹 두통을 호소하길래 엄마 닮아 그려려니 했었다. 대입 준비하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가 했었다. 처음 구토할 때에는 그 전날 음식을 상한것을 먹었으려니 했었는데 두번째로 구토한 날은 그전날 별로 먹은 것도 없는 날이었다
난 직감적으로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아들을 근처 큰 병원으로 데려가서 검사를 의뢰를 하였다 벌써 같은 일로 2번째 병원에 왔는데도 의사는 이상없다는 얘기만을 할뿐. 난 무조건 MRI를 찍자고 하고 의사는 정 그렇다면 CT촬영만 하면 충분하다고 하길래 CT 촬영을 하기로 했다.
촬영도중 CT 촬영 기사가 보호자인 나를 급히 찾는 것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CT 쵤영기사는 아들의 머리에 뭔가 심각한게 있으니 바로 MRI로 돌려서 찍자고 하다고 한다.
그리고 30분 정도를 멍하니 기다리다가 CT 촬영기사가 하는 말이 "아들의 뇌에 큰 종양이 있으니 빨리 조치를 취하라는 얘기였다"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얘기였다. 전화를 붙잡고 아내와 한 30분을 울은 것 같다. 하필 내 아들이냐고.......
그때가 오후 4시경, 나는 아들을 한국으로 빨리 이송해서 수술을 받게 할 생각이었고 한국의 응급실 준비까지 마치고 공항으로 바로 갈 생각을 하는 중에 비행기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수술 전문의사와 마지막으로 상의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수술중에 나를 보기 위해 수술복을 입은채로 나온 그 의사는
“지금 비행기을 타게되면 뇌압이 상승해서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우리 아들의 MRI 차트를 보는 , 처음 본 그 의사의 비장한 모습과 왠지 믿음이 가는 모습에서 난 모든 걸 버리고 그 의사에게 내 아들을 맡기기로 했고 바로 2시간 후에 수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 한 8시간 가량의 수술 그리고 새벽 3시에 수술이 끝나고 의사는 나오고... 그리고 아들은 마취에서 깨어나고 그리고 병원에서 일주일 가량 있었다.
머리에서 떼어낸 종양을 배양해서 검사한 결과가 양성이라서 재발 가능성이 극도가 낮다는 이야기를 듣기까지 일주일이 걸렸고 그 때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은 기억하기 조차 싫다. 아내와 함께 그때 흘린 눈물은 아마 내가 평생 흘린 눈물을 다 흘린것 같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의사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뇌수술 전문가이고 미국의 하버드 교환교수까지 한 경력의 정말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내 둘째 아들의 친구 아빠이기도 하였고 그리도 아내는 피부과 의사로 내가 특별한 (?)일이 있을때 들락거렸던 의사이기도 하고.
퇴원하면서 그 의사의 손을 잡고서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아들을 살려준 은혜를 어떻게 갚을수 있냐고. 그는 자신은 자신은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한 것일 뿐 하느님께 대신 감사를 드리리고 했었다. 그뒤 교회를 뜸하게 나가던 아내는 열심히 다시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살아있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아들이 그로부터 1년후 미국의 여러군데의 대학에 붙었었고 지금은 졸업을 한학기 남겨놓고 한국에서 여기저기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다
아들이 간혹 불평을 하면 난 아들에게 얘기한다. 죽다가 살은 놈이 건강하게 사는것 만도 큰 축복인데 뭐 그리 원하는게 많냐고.
지금은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들이 미국에서 전화만 오면 가슴이 덜컹한다. 혹시 또 아프지나 않은지....
만 22년을 살면서 엄마, 아빠 속한번 썩히지 않고 착한 아들이 그저 평범하고 착하게 건강하게 사는 것이 나의 첫째 아들에게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일뿐이다. 그 이후로 아들의 생일을 3월 23일 오늘로 바꿨다.
한국에서 기업체 인턴하고 있는 아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갑자기 보고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