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엄재호로부터 반창회 모임 하자는 전화가 걸려 온 건 3주 전쯤이었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였지만 재호의 푸근한 목소리는 내일이라도 당장 반창회를 열어야 할 것 같은 달뜬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달력에 빨간 볼펜으로 꾹꾹 적어 놓고도 매일 매일 반창회 모임을 갈무리 해왔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수년전에도 반창회 모임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때는 다소 시큰둥해 있었다.
아마도 내게 고3의 추억은 종이장처럼 얇게 간직되어 있어서 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특별히 열심히 공부했었다는 기억도,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며 사건(?)을 만들었던 추억도
흐릿하기 때문이다.
호출해야할 지난 날의 삽화가 파노라마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는 친구들이 무작정 보고 싶어진 거다.
2호선 삼성역에 내려 코엑스를 스쳐 지나가는 길이 그래서 종종 걸음으로 이어졌다.
7시 남짓 도착한 ‘삼성 국수’에는 벌써 예닐 곱명의 친구들이 자리를 잡고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임시 반장 재호, 이국적 눈매의 상욱, 호방한 관호, 아직도 천진해 보이는 웅식, 스마트한 태정,
젠틀한 득민, 서글서글 보이는 근수가 나를 반긴다.
뒤이어 연어 떼처럼 속속들이 차례로 친구들이 들어서며 악수를 청한다.
친구들 이름과 얼굴을 미리 확인하고 왔어야 했는데, 언뜻 떠오르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떠랴... 우린 동창인 걸...
몇 잔 맑은 술에 친구들 얼굴과 이야기를 담아보니, 스르륵 친구들이 30여년전 모습으로 오바래핑
되기 시작한다.
‘아, 맞아 맞아... 저 친구였어!’
나는 속으로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다시금 불러 본다.
김춘수의 ‘꽃’처럼 내가 친구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친구는 나에게 다가와 하나의 몸짓이 되겠지^^*
장군 영준이도 장군의 위엄은 벗어 던지고 금새 우리들이랑 부랄 친구가 된다.
어느 모임에서나 목소리 데시빌이 제일 크고 대화 점유율이 제일 높은 창완이는 예의 오늘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목소리로 우리들을 즐겁게 해준다.
여전히 단아한 형균이가 위상언 선생님을 모시고 오면서 우리 모임은 2라운드에 접어든다.
각자 돌아가면서 근황과 자식 농사 결과를 선생님께 말씀드리는 시간이 있었다.
모두들 번듯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자식 농사는 차이가 꽤 있었다.
동익이는 군대까지 갖다 온 아들이 있기도 했고, 이제 겨우 초등 4학년 막둥이를 키우는 친구도 있었다.
아, 자식없이 와이프랑 호젓하게 사는 득민이도 있다...
눈매가 아직도 살아있는 도현이는 사업이 잘되고 있다고 자랑하는 바람에 우리반 재정 부장을 담당하기로 했다^^*
유난히 우리 반에 의사가 많아서 인지 자기 주치의가 되어 주었다는 덕담이 이어졌고
터미널 앞 아름다운 다리를 환중이가 설계했으며 우리나라 주요 토목 사업에 우리 친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나는 금새 감동을 먹으며 친구들이 자랑스러워 졌다.
현용이었던가... 반 친구들과 같이 했던 미팅 파트너가 현재의 자기 와이프라는 놀라운 고백을 하기도 했다. 이 친구는 요즘 채식 애호가 되어 날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우리들의 정담이 이어지던 중 갑작스러운 전기 사고로 정전이 되어 버렸다.
급기야 우리는 라이타, 핸드 폰, 랜턴등 빛을 밝힐 수 있는 문명의 이기를 총 동원해 우리들의 사랑방 모임을 이끌어 갔는데 잠시 후 촛불이 등장하면서 대학 때의 MT 문화 버전으로 바뀌었다.
막거리 몇잔으로 알싸해진 영혼들이 촛불앞에서 고백의 순례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위상언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난 뒤 당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신다. 퇴직 후에 오히려 더 바쁘게 지내시는, 더 즐겁게 보내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참 좋아 보이셨다. 어찌나 말씀을 감칠 맛 나게
하시는 지 듣는 내내 웃음이 터졌다.
강남 글쓰기 교실에서 50~60대 아주머니들에게 인기가 폭발적이라는 말씀을 전해 듣는 순간 나는 위상언
선생님을 내 인생의 롤 모델로 삼았다.
다만, 수강 학생은 30대 아주머니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내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들 모임의 3라운드는 ‘준 노래방’이다
2라운드를 마치고 총총히 건물 밖으로 나온 우리들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대책 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의 반장 엄재호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은 충만된 기쁨으로 우리에게 외친다.
“렛츠 고우~ 준!”
노래방에서의 시작은 위상언 선생님이다.
한국 가곡에서부터 시작하여 독일 가곡을 거쳐, 영국 가곡까지 이어졌던가...
선생님은 가곡 메드리를 놀랍게도 무반주 폭풍 창법으로 펼치신다.
(아줌마들이 뿅 갈만 하다!!!)
선생님 이후의 무대는 늦게 온 프리랜서 태수의 몫이다.
중년의 남자 미소가 예쁘다는 걸 태수를 통해 느낀다.
90년대 중반 까지 운동권에서 살았다는 요한이의 노래 또한 만만치 않다.
다만 특이한 것은 발라드 노래도 민중 가요 버전처럼 힘차게 부른다는 점이다.
압권은 야들야들한 창법으로 노래하는 유현이었다.
나게 간직된 현이의 이미지는 ‘말죽거리 잔혹사’인데 노래 부르는 모습 보니깐 완전 제비다^^*
아, 동준이의 감미로운 목소리의 노래도 기억난다.
그러던 중 예고도 없이 특공대가 투입되듯이 갑자기 3명의 레이디가 등장한다.
발라드, 포크 버전에서 돌연 삼바, 디스코 버전으로 바뀌더니 여인들이 오색 조명아래 돌기 시작한다.
우리들의 탬버린 댄스도 흥을 더해간다.
내가 기억하는 건 거기까지다.
나는 슬며시 룸 밖으로 나왔는데 카운터 앞에서 또 하나의 상을 차려 놓고 캔맥주를 마시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자칭 노래를 멀리하는 친구들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술과 대화를 더욱 좋아하는 친구들이었다.
노래방 카운터 앞에서 판 벌여 놓고 술 마시는 친구놈들은 생전 처음 본다.
구수한 입담의 제국이가 도현이와 함께 갔던 룸싸롱 후일담이 무척 재미있었다.
가장 편안하고 거리낌 없이 터지는 웃음을 뒤로 한 채 나는 준을 빠져 나왔다.
밤비 내리는 삼성동 ‘준 노래방’에서의 친구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나이 오십을 넘긴 우리들은 하늘의 뜻을 조금은 알아 버린걸까...
40대 보다 훨씬 여유로워 졌고 부드러워졌다.
난 그게 좋다^^*
여성성을 간직하기 시작한 우리 50대 친구들의 새로운 추억 만들기는 그래서 이제 부터다.
아래는 우리 모임에 참석했던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이다.
위상언 선생님 (숲해설가, 중학교 방과후 학교 수업, 강남 복지관 글쓰기 교실 지도, 전직 고궁해설가, 춤에도 일가견 있으심)
곽정수 권중혁 김근수, 김근의 김영준 감창완
김태정 문관호 박요한 배도현 변형균 송태수 엄재호 유웅식 유제국 유 현 이상욱 임동준
정동익 정현용 주환중 최재식 최종렬 탁용석, 한득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