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산행 전부터 있어온 감기기운 때문으로만 알고
하루 종일 앓았다.
"악!!!"
오늘 아침 출근 길
평소와 같이 전철역 계단 뛰어 내려가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기적 어기적...지금 나의 걷는 모습은
포경수술 막 받은 넘의 그것 그대로고...
산행 후유증이
생각보다 심한 것 같다.
지난 토요일
등산반 10월 정기산행으로
경기도 포천에 있는 국망봉에 다녀왔다.
단풍철 테마산행으로 굳이 그 곳을 택한 이유는
순전히 등산반 회장인 본인의
개인적인 기호 때문이었다.
'전문산악인'이라는 일컬음에도 불구하고
국망봉은 개인적으로 미답의 산이었다.
명지산에서 바라볼 때도 그랬고
광덕산, 백운산 다녀올 적
차창 너머로 일별했을 때도 느꼈다.
참으로 잘 생긴 산이다...
수려한 자태는 물론
경기도 제3위 봉이라는 산높이의 끌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가지 못한 아쉬움이 많았는데
그 숙원이 이제야 풀린 셈이다.
천렵 때 말고
등산반 행사만으로는 근래에 보기 드문
카풀이었다.
지역별로 안분하여
경기도 남부에서는 김정천군의 차량
강남방면에선 권순표선배 차량
그리고 강북의 남구식군 차량에 분승한 멤버들이
약속장소인 장암저수지에 모였다.
국망봉 배경으로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가을 저수지의 寒氣는
청량감으로 다가온다.
김융현, 권순표선배
김영돈, 김정천, 김주동, 남구식(제수씨), 정회준, 최승필, 한득민
이상 10인의 동지들이다.
등산반 회장의 눈물겨운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배신과 전향을 거듭한 변덕스런 친구들도 눈에 띄지만
그런 감정일랑 서둘러 정리하고
신로령을 향해 출발...
좌측의 신로봉 암릉을 감상하며
전세낸 듯 한가하기 그지 없는 산길 따라 오르니
2시간만에 한북정맥 주능선이다.
시간은 이미 정오를 넘겼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주변 경치 즐길 여유도 없이
능선길 옆 새둥지처럼 움푹 팬 참호에
자리부터 깔았다.
막걸리 곁들여 한 술 뜨고 나니
이제야 사방의 전망이 눈에 들어온다.
신로봉에 오르니
북쪽으로 광덕산과 백운산이 아스라하고
동으로는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1400미터급)이 늠름하다.
그리고 남쪽 펑퍼짐한 능선 오솔길 따라
뾰죽하게 솟은 봉우리가
오늘의 목적지인 국망봉이고...
식후의 포만감 이겨내며
오르락 내리락 인터벌 트레이닝 끝에
국망봉에 오르니
드디어 남쪽의 시계도 터진다.
좌측으로 명지산이 우뚝하고
저 멀리 견치봉, 강씨봉, 청계산, 운악산으로 이어져
정맥은 그렇게 한강까지 내달리나 보다.
아무튼 정상표지석에서 기념촬영하며
정상에 다다랐다는 기쁨,
그간의 힘겨움을 서로 위로하는 순간까지는
행복했는데...
정작 그 날 산행의 최대 난코스는
별 생각 없이 접어든
하산길이었다.
예상표고차 600미터를
총거리 3킬로미터, 소요시간 한시간 만에 주파하는
거의 수직 낙하였다.
레펠 타듯 미끄러져 내려오며
정회준의 부실한 도가니 걱정에 내 한 몸 돌볼 겨를이 없었는데
다행히 전원 별 탈 없이 하산하였다.
출발지였던 장암저수지에 돌아와
권순표선배는 사정상 일찍 귀가길에 오르고
나머지 일행은 뒤풀이를 위해 창동역으로 출발하였는데
한북정맥은 다 좋은나
유일한 귀로인 47번국도의 교통체증이 흠이라는걸
다시 한번 절감했다.
뒤풀이장소인 창동역 왕골감자탕에 도착하니
예정시간보다 2시간 늦은 7시다.
그동안 몰려드는 손님에
확보한 예약석 사수하려 노심초사한
박인호군의 마음고생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감자탕 안주로 소줏잔 정신없이 돌아가고
안주거리 거의 떨어질 즈음 차수 바꾸려 일차 정리하니
2차는 부득불 박인호군이 쏘겠단다.
그리하여 느티나무 아래 좌판에
방어, 전어회가 먹음직스럽게 깔리니
술판 다시 시작이다.
한동안 넋을 놓았다 보니
이제는 정말 갈 시간이다.
창동역에서 경기 남부까지는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기도 하고...
박인호군의 선행에 따라 굳은 예산 잔액으로
김정천군의 대리운전비를 지원, 덕분에 편하게들 귀가했고
머나먼 원격지로 느껴지던 강북공포증에서 벗어났다.
박인호군과
늦게나마 자리를 함께 해준 송준섭군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그 날의 동지들...
수고 많았습니다.
ps
그 날의 사진촬영은
사진 찍는 폼이 전문가 수준인 김정천군이 담당했고
조만간 게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