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월 15 일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려니, 몸이 물 먹은 솜보다 더 무겁다. 양쪽 무릎은 쑤시
다 못해 걷기조차 힘들다. 전날 일요일의 산행을 마치고, 비교적 이른 시간인 밤 11 시쯤 잠
들었으나, 아직 취기 또한 완전히 깨지 않았다. 5 분만 더 자기 위해 세 번을 쓰러졌다가 그
래도 어쩌겠는가? 정신력으로 일어나서 출근했다. 술이 완전히 깨기 전의 2 교시까지 몽롱
한 정신에서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지난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의
힘듬과 보람의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거꾸로 올라가서, 3 월 11 일이었다. 12 일이, 일 년에 한 번씩 있고, 이 번에는 새로운 회장
을 뽑는 중요한 모임이라는 판단으로 혹시 있을 '동료 교사' 애주가 복병(?)을 피해 뒤도 돌
아보지 않고 퇴근 시간 4시가 되자, 근무하는 도서관 - 나는 학교 도서관 사서 일도 맡았
으므로 혼자 도서관에서 근무한다.- 뒷정리를 하고 학교를 빠져 나왔다.
정문을 나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 정 선생님 같이 가요.
하는 게 아닌가. 서문 여고에 근무하는 정제설 선생이었다. 그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데, 여
중에서 5 년 동안 같이 근무했었기 때문에 나와 매우 친하다. 더구나 그는 여고의 전교조
분회장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소위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다. 특이한 것은, 나이가 43 인
데, 아직도 노총각이다.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내 생각에 맨날 피부가 뽀얗고 삼삼
한 영계(?)들과만 생활하다보니 세월 가는 줄, 즉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걸 모르는 것
같다는 게 그 선생에 대한 나의 판단이다. 키도 180 센티 가까이 되고, 체격도 알맞은 사람
이 왜 장가를 안 가는 건지, 못 가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서문 여고에는 이런 교사가
예닐곱은 된다. '재식'이 말에 의하면, 여학교 근무 교사 가운데 노총각이 많은 것은 일반적
현상이라나?
어쨌든 그와 나는 평촌에 산다. 목적지가 같고 그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니, 내 차로 같이 귀
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더구나 최근에 만나지 못해서 차에서 내리자 바로 이별
을 선언할 처지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와 나는 '용호상박'의 당구 실력으로 둘다 300점을 친
다.
- 정 선생님, 등심 내기 삼판양승 어때요? 술은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마시고 싶은 만큼
사주기, 그리고 이긴 사람이 게임비 정도는 내고요.
전에도 그와 비슷한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도저히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낼 총회에
지장이 없을 만큼만 마시면 되지 뭐.'
- 커 좋지.
우리는 평촌 우리집에 내 차를 주차시켜 놓고 당구장으로 향했다. 결과는 2 : 0 참패, 굳이
이유를 대자면, 나는 그 동안 당구를 안 쳤고 그 선생은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쳤단다. 결국
등심에 소주를 둘이서 두 병 마시고, 그 선생이 사주는 맥주 1000 cc로 약간 알딸딸한 채 귀
가.
드디어 3 월 12 일, 그 날도 사실은 '국어과' 회식이 있었다. 역시, 4 시에 퇴근. 약 4 시 15
분부터 시작된 회식에 참가, 삼겹살 두 세 점 먹고(왜냐면 동창회 뷔페가 실속 있기 때문)
소주 두 잔 받은 다음 리더스 클럽으로 직행. 승필이가 먼저 보이고 이어서 처음으로 보는
신상철, 영원한 교육동지, 최재식, 동창회에 처음으로 나왔다는 '이병솔', 그런데 병솔이는 자
기가 자신을 나에게 소개할 때까지 내가 알아보지 못했다. 하긴 학교 다닐 때 54 킬로 나가
던 녀석이 25 년 만에 84 킬로의 거구가 되어 나타났으니, 내가 어떻게 알아보겠는가? 눈,
코, 입을 자세히 뜯어보고야 세월의 흐름을 극복하고 녀석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하긴
녀석과 나는 1 학년 때는 짝이었고, 2, 3 학년도 같은반, 3 년을 한 교실에서 생활했지 않은
가? 녀석이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들어간 것은 알았지만, 현대 자동차 디자인실에 근무하는
것은 최근에 인터넷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자녀가 넷이다. 아들을 낳으려고
계속 낳은 것도 아니고 자기가 좋아서 그랬다나? 참 대단한 녀석이다.
병진이가 주는 고급 볼펜(8 만원 상당)을 잽싸게 챙겼다. 옆에는 강재현이 앉았는데 유수한
기업의 대표 이사님이라 그런지 무척 무게 있는 앉음새였다. 재식이를 비롯하여 약속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 입장
하는 것이었다. 자주 보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아주 반가운 인물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는 '김덕언'이다. 한양대 의대를 나와 임상병리를
전공한 의사이다. 녀석과 나는 중학교 때 거의 매일 숙대 앞에서 라면 사먹으며 탁구를 치
던 사이였다. 공부는 서로 라이벌이었는데, 반에서 1 등은 '이승선'이 늘 했었고 나와 녀석이
그 뒤를 바짝 쫒았던 기억이 난다. 녀석은 미국에서 귀국한 지 한 달 되었다며, 나를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 사실 중학교 때는 매일 친하게 지내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녀석은
중창단 활동, 나는 '날라리짓' 하느라고 별로 시간을 같이 하지 못했었다. 각각 문과, 이과라
서 자주 만나지 못한 점도 있고.
약간의 쇼(?)를 보인 끝에 '송정순'이 회장에 당선되었다. 정순이와 나는 학교 다닐 때는 잘
모르는 사이었는데, 내가 동창들과 활기차게 만나면서 몇 번 술 자리를 같이 했었다. 침착하
고 포용력 있어 보이기 때문에 승필이에 이어 우리의 머슴 노릇을 잘 하리라 믿어진다.
2 차는 원래 가던 순대집에 가려 했으나 그곳이 문 닫는 바람에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런데
작년과 다른 점은 2 차부터는 주로 많이 가는 주류 쪽과 각자 친구의 성향, 평소의 친밀도
에 따라 찢어지는 무리가 있게 마련인데, 이 번에는 한 무리로 통합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
주 급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닭도리탕과 해물탕과 파전을 안주 삼아
두꺼비를 잡아 대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으나, 대체로 승필이에게 보내는 감사의 치사와
정순이에 대한 수고의 기대 말이 화제의 주종이었다. 일부 후배들의 모습도 보여서 자리가
더욱 빛났다.
날짜가 바뀌고 생맥주 집으로 갔는데 인원이 줄지 않는 것이었다. 뭔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
은지. 체력과 酒力의 경연장 같았다. '신의식'이 예술가의 풍모로 나타났고 총동의 일로 수고
가 많은 7 회 '이창선'도 합류하여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원래는 2 차부터 항상 회비를
걷어 계산했으나, 이상하게도 회비를 걷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강재현'이 모두
쏘았단다. 참 고마운 일이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친구가 있어 술 한 잔 살 수 있는 거, 이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가? 난 벌이가 그리 넉넉치는 않으니, 다음 기회에 쏘는 수밖에. 어
쨌든 재현아! 고맙다. 언제 한 번 삼삼오오 만나면 그 때는 내가 한 잔 살게. ㅎㅎㅎ
3 차가 끝난 뒤 누군가의 제안으로 4 차가 시작되었다. 목소리 큰 래순이 옆에 앉게 되었다.
래순이도 많이 취해 있었다. 그런데 녀석의 행동이 참 재미있었다. 단짝인 김원기가 없을 때
는 원기 어딨냐고 아우성이더니, 막상 원기가 나타나자, 반가워하는 게 아니라 동생에게 말
하듯 하는 거였다. 원기 왈,
- 이게, 지는 척 해 주니 마구 기어오르네.
- 아쭈, 요게 한 주먹 짜리가 까불어.
인호를 비롯한 우리가 그들의 모습을 보고 파안대소하는 바람에 그들의 시비도 시들해졌다.
새벽 세 시가 넘어서 헤어졌다.
방향이 같은 '김병기'와 '이병솔' '이제환'이와 '나'는 콜 택시를 탔다. 넷이 탓으므로 경제적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안에서 제환이가 말했다.
- 회준아, 내일 수리산 일주 어떻냐? 한 네 시간쯤 걸리는데.
- 커 좋지. 병솔아 너도 갈래?
- 전화 주라. 이 몸도 따라가 보자꾸나.
병솔이도 지지 않았다.
다음날, 토요일 만취에 세 시간 수면, 기다시피 출근했다. 1 교시는 정신력으로 2 교시는 중
간쯤 수업하다가 자습시키고, 엎드려서 취침, 종이 울린 뒤 제환이에게 전화 걸어 산행을 취
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로 산행은 무리라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男
兒一言重千金" 이라 하지 않았는가? 퇴근 때까지 견뎌보고 판단하자. 12 시 30 분 퇴근, 김
밥 두 줄을 운전하며 먹고, 차에서 제환이에게 전화, 병솔이와 연락해서 등산 가자고 말했다.
녀석의 목소리도 늘 좀 그렇기는 했지만, 힘이 없었다. 솔직히 오늘은 쉬자는 말이 제환이
입에서 나오기를 기대했으나 제환이가 누군가? '한남정맥'의 핵심 멤버가 아닌가?
결국 산본까지 차를 몰고가서 병솔이와 합류, 셋이서 수리산 종주에 들어 갔다. 문제는 병솔
이었다. 제환이와 나야, 최근에 설악산, 명지산 등정을 통해 단련된 몸이지만 병솔이는 산행
시작 20 분이 지나자, 허벅지 통증을 호소했다. 봉우리 세 개를 넘어야하는데 말이다. 우리
는 할 수 없이 꽤 오래 휴식을 했다. 제환이도 나도 전 날의 과음으로 그리고 나는 오전 근
무를 하느라(제환이와 병솔이는 토요 휴무)잠도 못 자고,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거기다
가 명지산에서의 무리한 산행으로 무릎도 아팠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참았다. 다행히 병솔
이도 통증은 간간이 호소했지만 네 시간에 걸친 산행을 인내로 버텨내었다.
내 차는 일요일 날, 즉 다음날 북한산 정기 산행 출발 때 제환이가 우리집에 가져오기로 하
고, 평촌 뉴코아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회사 송별연에 참석했던 주동이까지 합세 2 차에
걸쳐서 또 진하게 음주, 몸은 완전히 파김치가 되었다. 집으로 와서 씻는둥 마는둥 취침.
북한산이 어딘가? 9 시까지 가려면, 7 시에는 출발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아침 여섯 시 반
에 정신력으로 일어나, 등산갈 채비를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집 사람은 질렸다는 듯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 배낭을 챙기고 술이 덜 깬 얼굴로,
- 다녀 올께.
7 시 20 분쯤 내 차를 몰고 제환이가 우리집 앞에 도착했다. 킴스클럽에서 물과 안주와 소
주 두병을 샀는데, 한 병은 실수로 깨뜨렸다. 너무 아까웠지만,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재빨
리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에서 단잠을 자고 택시로 갈아타서 그린파크에 도착, 컵라
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권순표 선배님(2), 허장 선배님(3), 박연한(5), 한용섭(7), 이상봉, 박인호, 남구식, 송준섭과
그 2 세(중 2, 아들), 김영돈, 이제환, 그리고 나. 이렇게 모였다. 최재식이가 이모님 상을 당
해서 못 온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사실 녀석하고 같이 산행하고 싶어서 억지로 온 것도 한
20% 는 되는데.... 선배님들은 원기가 빠진 것을 섭섭해 하는 눈치였다. 감초격인 성우와 희
진씨가 없는 자리도 많이 허전했다. 이 자리에 없어 서운한 사람이 한 둘이랴? 그러나, 우신
등산반은 오라가라 하지 않고 형편대로 진행하는 모임이다. 인호가 간단하게 산행에 대한
안내를 하고 단체 사진을 찍은 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영돈이가 앞장을 서고 인호가 뒤
를 책임지기로 했다. 우리의 참가 인원도 예상보다 적었지만, 봄의 화창한 날씨치고는 등산
객이 많지는 않았다.
동기들이야 자주 보는 얼굴이고, 박연한이는 전에 청계산에서 만난 적이 있고 용섭이 후배
는 이미 많이 친숙해 졌고, 권순표 형은 처음 만나는 얼굴이었으나,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전에 내 소설의 애독자이신 1 회 '유형근' 선배님(부경의 애독자)
과 좀 닮았다는 인상이었다. '허 장' 선배님은 원래 영화 배우처럼 생겼기 때문에 학창 시절
에도 얼굴을 알고 있었다. 흰머리만 났을 뿐 피부는 아직도 뽀얗고 주름도 별로 없으셨다.
한마디로 곱게 나이를 드셨다고 해야하나?
선배와 후배가 덕담을 나누며, 산행을 시작했다. 제환이와 나는 정말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
다. 산행 자체가 사실은 무리였다. 하지만, 어쩌랴 처음 고비를 넘기면 괜찮아 지겠지. 박인
호가 아주 쉬운 코스라고 말한 것은 절반의 거짓말이었다. 설악산 오색약수 코스 못지 않은
경사도도 있었고, 밧줄을 타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는 곳도 있었다. 다행이라면 눈이 녹아
미끄럽지 않은 것이었다. 우이암 꼭대기에 올라 멀리 보이는 오늘의 하이라이트 '오봉'을 보
고 크게 심호흡을 하자, 간밤의 술이 깨고 몸은 다시 회복되는 듯했다. 제환이를 슬쩍 봤더
니, 녀석은 힘든 듯 연신 땀을 닦아대고 있었다. 도중에 '오봉'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철제
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 자연의 예술은 정말 신기하고 또 경이로웠다. 북한산이 국립공원
인 이유를 말해주는 듯했다. '오봉'을 배경으로 동반한 사람 중 최 고령인 '권순표' 형과 오
늘의 막내 '용섭'이와 한 컷 찍어 줄 것을 인호에게 부탁했다. 이 소중한 사진은 오래오래
나의 귀중한 보물이 되리라!
우리 목적지인 '오봉' 가까이에 돗자리를 깔았다. 어쩐지 용섭이(7 회)의 배낭이 무거워 보인
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녀석은 막걸리 아주 큰 통 세 개를 사서 짊어지고 왔었다. 아마도
지난달 산행에서 등산반 최초로 술이 모자란 경험 때문에 넉넉하게 준비한 것 같았다. 머릿
고기도 준비한 걸로 보아 넉넉한 후배의 마음씨를 읽을 수 있었다. 좀 남은 듯 싶게 점심과
술을 마신 우리는 곧 '오봉'으로 향했다. 멀리서 보는 '오봉'도 멋있었지만 가까이서 보는 오
봉은 정말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정말 자연 내지는 神만이 만들 수 있는 모습, 그 자체였
다. 우리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나는 '오봉'의 아주 가까이는 다가가지 않았다. 적극적 성격의 박인호, 박연한이는 제 2 봉까
지 갔다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순표형이 조금은 위험하고 험난한 그곳에 악착같이 가는
거였다. 아까부터 절룩절룩 위태롭게 걷던 분이 말이다. 그래서 내가 여쭈어 보았다.
- 아니, 형 힘들다며 거기는 왜 다녀 오셨어요?
- 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이니, 너무 자세히 묻지 말아라. ㅋㅋㅋ
참 형님도, 천지가 화장실인데.....
구식이와 상봉이는 '五峰'의 제 1 봉 아래서 식곤증을 달래며 누워 있었다. 그 모습에 여유가
느껴져서 아주 좋았다. 신선이 따로 있나? 저게 신선의 모습이지. 하고 생각했다.
문제의 '여성봉'도 보았다. 사진보다는 덜했지만, 아주 중요한 부위(?)를 발로 디딜 때의 느
낌은 좀 독특했다. 어찌 이리 생겼을까? 원기가 옆에 없어서 걸쭉한 농담을 할 수 없는 것
이 내심 안타까웠다.
송추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답사할 때의 거액 희생(?)을 아파하는 뜻
으로 국립공원을 빠져나오자 일제히 담배를 펴댔다. 담배불의 숫자를 세어보니 3 백만원(?)
어치였다. 물론 열 발짝 뒤에서 핀다면...ㅋㅋㅋ
회식 장소 '청마루' 에서의 오리고기는 너무나 맛있었다. 운동 후에 맛없는 음식이 있을까마
는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술이 당기고 안주가 맛있었다. 우리는 맘껏 취하
고 또 취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회원들의 요청으로 박인호의 대금 연주가 있었다. 다음달
산행은 '두륜산'이다. 대금과 '목포의 눈물'은 너무 잘 어울린다.우리는 일제히 박수로
신청했다. 박인호의 '대금'에서 구슬픈 가락이 나와 목포에서의 추억만들기를 예고했다.
-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 드-느은 데......
그리고 족구를 했다. 처음에는 임의로 편을 갈라서 했다. 내가 속한 팀이 이기는 바람에
회식비를 안 내어도 되었다. 조금은 미안했다. 다음으로는 '4회와 非4회'의 만원내기
족구가 이어졌는데, 내가 속한 팀이 또 이겼다. 그 2 만원은 심판을 본 송준섭의 2 세에
게 주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내 등산 자켓이 없어졌다. 유명 상표 'K2'의 모조품 kor 'K2' 이긴
했지만, 지난 번 겨울 설악산 등반에서 필요해서 할부로 장만한 아주 소중한 자켓이었다. 그
런데 옷을 찾는 과정에서 일행 중 한 명이 사라진 것이 발견되었다. 이 때 제환이가 말했다.
- 한 명이 없어진 것과 회준이 자켓이 없어진 것은 관계가 있다.
제환이의 말은 적중했다. 일행 중 한 명이 만취하여 계곡에 앉아 있었는데, 내 자켓을 입고
있었다. 자기 것은 배낭에 잘 모셔두고. 내가 보기에도 색깔이 비슷했다. 얼마나 취했으면,
남의 자켓을 자기 것인 줄 알고 입었을까? 아마도 술이 빨리 깨라고 흐르는 물가에 않아 있
었을 테지... 그게 누구냐고? 안 가르쳐 주지.ㅋㅋㅋ 구식이는 과음으로 잠시 정신을 놓았을
뿐,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다. ? ? (아)야, 나는 너보다 더 커다란, 그리고 심각한 실수를 한
적이 많단다. 별거 아니니 맘 쓰지 말아라...
집에 도착하니, 지난 목요일부터의 '음주'와 '산행'과 '족구'로 몸은 물 먹은 스펀지처럼 무거
웠다.
그러나 마음만은 행복했다. 이렇게 고달프기까지 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건강을 주시는
하느님과, 부족한 나를 마냥 기쁘게 해 주는 친구들, 선배님들, 후배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2004.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