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하라고 해도 못하는 건 못한다. 하던 짓도 멍석 깔리면 못하는데 안 하던 짓을 하라니 죽어도 못하겠는걸 탓하지 말자. 대신 광대들이나 놀자.
오늘은 토요일, 이사님 산하의 세 개 부서 산행이 있는 날이었다. 세 시간짜리 산행을 마치고 오리고기를 먹기로 며칠 전에 회람이 돌았었다. 별로 내키지않았지만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가줘야 한다는 최소한의 예의上 가기로 했었다. 부서장의 얼굴을 세워주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구 경계에 있는 山 아래로 아침 9시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꾸물거리다가 그만 5분이 지나 도착했다. 아무도 없었다.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해볼 길도 없고, 여기가 모이는 곳이 맞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좀 어설프다. 딱 부러지고 모양 있게 못하고 되면 되고 안되면 말고, 어린 심청이 젖 주려고 심봉사 야밤에 봉창 두드리는 식이다. 난 당최 하려는 의지가 없다. 원래 시인들이 게으르다는데 그래서 그런 거 같다고 자위한다. 사실은 회사 일은 정말 하기가 싫다. 다행히 능력 있는 사람들 틈에 끼여서 무임승차 비슷하게 밥 벌어먹고 사니 불행 중 다행이다.
하여튼 사람은 안보이고 정각에 출발한 사람들 원망도 하다가 빈 산길을 올랐다. 그런데 요즘 세태가 이렇게 각박해졌다. 코리아 타임이 없어져서 좋다만 그래도 정각에 출발하는 건 너무 야박하지 않나? 교회에서 가는 산행도 정각에 출발하더라. 5분은 기다려야 하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동축사 길을 오르는데 별 흥이 나지 않고 내가 꼭 이 길을 가야 하는가 하는 수치감도 들고 다리 힘도 빠지고 콘크리트 길로 승용차들이 가끔 올라가면서 매연도 내뿜고 가슴에 땀은 벌써 차 올라서 동축사에 올라갔을 때는 더 올라갈 생각이 없었다.
삼사십 평 되는 절 마당에 올라가자 정갈하게 차려 입은 아주머니들이 법당에 올라가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주머니들이 예쁘다. 개중엔 젊은 여자도 있어서 산중에 단둘이 앉아 호젓하게 대화라도 한다면 신선계가 따로 없을 듯했다. 꿈인 줄 알면서 꾸는 꿈은 얼마나 허망한가. 정신을 차리고 절 안내판이나 읽고 있는데 나무 밑에 앉아 있던 중이 나직하게 염불을 외었다. 그 소리가 듣기에 얼마나 편하던지 외할머니가 등 긁어주는 것 같았다.
동축사는 인도에서 보내온 황금과 돈으로 지은 절이란다. 안내문을 다 읽고 돌아서는데 염불을 외던 중이 나더러 자기 옆에 앉으란다. 웬 환대냐 싶어 싱긋 웃어주고 앉으니 나이와 직업을 묻는다. 자기는 예순 둘이란다. 조선소에 다닌다는 말에 생산직이냐 사무직이냐 묻는다. 사무직이라니 편하겠단다. 몸은 편한데 머리가 아프다니까 왜 아프냐고 묻는다.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어서 그렇다니 세상에 편한 일은 없으니 다만 초월하라고 했던가.
내가 교회에 다닌다고 했더니 하나님에 대해 설명해 보란다. 하나님은 이 세상 조물주고 사랑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설명할 테니 들어보란다. 뭐라고 하는데 하나님을 욕하는 것 같다. 그러곤 손바닥만한 십여 페이지짜리 화엄경 설명서를 주고 갔는데 그때부터 법당에서 염불소리가 본격적으로 흘러나왔다. 절 뒷길로 해서 등산로로 올라갔는데 온 산에 염불소리가 울렸다. 흔히 듣던 말도 있었지만 거진 못 알아듣는 염불이었다. 수리수리마수리도 들리더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염불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 지더라.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난 염불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절 근방을 떠나지 못했다.
염불은 1시간 가량 계속된 것 같았다. 성경에는 다른 종교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지만 호기심에 쪽지책을 읽어보았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말인 거 같았다. 풍경 소린지 쇳소리 나는 종소리가 들리더니 염불이 끊기고 산은 다시 고요해졌다. 오늘은 참 별 희한한 경험도 다 해 보았다. 중하고 대화도 하고 염불소리도 들은 소득을 詩로 적어보았다.
동축사東竺寺 까까중 염불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중얼중얼중얼중얼
하나님은 天手
부처님은 千手
악업을 소멸하고 불법에 귀의歸依
화엄 깊은 뜻은 꿈인 듯
중노릇도 수월찮으니
인습을 벗어야 하느니라.
목탁 반주에 진양조로 외던 경經
중모리로 가빠져
중중모리로 넘어가면 깔딱,
중타령인가
보살들 궁둥이는 휘모리로 들썩이고
기왓장에 죽은 귀신 울음에
속세를 버린 꿩이 대숲을 들쑤신다.
천년 부서진 탑이 껄껄껄,
둥글게 돌아가고
법당 증축에 한 집에 천만원씩은 내야지.
道도 닦다 보면 이력이 나서
배추밭 스프링클러도 자비慈悲를 쏘아대고
위성티브이가 파르라니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