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 베어 물면 파란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언젠가 국어 책에서 읽은 듯한 글귀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그런 하늘이었다. 일본측 碁友들이 새벽 비행기로 도착했다던데 이런 날씨라면 그들의 피로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8시 30분, 다소 어색한 느낌이 없지 않은 개량한복을 입고 자동차에 키를 꽂았다. 연신내 선생님 댁까지 30분이면 도착할 것이고 거기서 한시간이면 서초동까지 늦을 이유가 없다. 엊저녁에 참가 선수 전원에게 확인 전화도 한 터이고 거기에 스페어 선수까지 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면서 차를 몰았다. 9시가 조금 넘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댁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한 눈에도 지난 봄에 비해 더 야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혹시나 오늘 대회 참석이 선생님께 큰 무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선생님께 여쭈었고 선생님은 예의 특이한 억양으로 문제없음을 자신하셨다. 사실 선생님은 몇 달 전 건강검진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통보 받으신 후 여러 가지를 조심하시는 중이기도 했다.
서울역, 남산터널, 반포대교 그리고 서초동. 차는 막힘 없이 잘빠졌고 9시 40분 경 대국장소인 한일 바둑에 도착했다. 진선배, 박운교, 김정천, 하민호, 김주동... 낮 익은 얼굴 7,8명이 이미 와 있었고 일본 팀도 막 도착하는 중이었다. 단장 격인 신조 氏가 반갑게 인사했고 뒤이어 작년에 보았던 고바야시 氏를 비롯한 낮익은 얼굴들과 인사를 나눴다. 올해 75세인 신조 氏의 부친을 비롯하여 일본 팀은 다양한 연령층과 여성(3인)을 포함하고 있었다. 우리 팀도 속속 도착했다. 대전에서 올라온 안관욱도 도착했고 막내인 15회 이상규도 도착했다. 모임에 처음 참석하는 김용찬과 송정근은 졸업 후 처음 뵙는 선생님을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다가 뒤늦게 다시 인사하는 작은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10시 30분 경, 최재식이 도착함과 동시에 우리도 18명의 선수가 다 채워졌고 10여분 간 상대팀에 대한 소개 및 인사, 룰 설명 등이 있었다. 일어와 한자, 한글로 표기된 두 팀의 명찰 및 3라운드 대진표까지, 과연 이라는 탄사가 나올 만큼 일본 팀의 준비는 참으로 꼼꼼했다.
양 팀의 선수는 각각 18명, 오전에 1국을 두고 오후에 2,3국을 두어 큰 의미는 없다하지만 어쨌든 전체 승부를 가려 보자는 것이 목적이었고 하이라이트는 3국에서 있게 될 양 팀의 주장 전이었다. 안관욱 프로와 히라오카 아마추어 세계 챔피언(2회 달성)과의 대국은 작년에도 두어진 바 있거니와 히라오까 氏의 흑선으로 안관욱 프로가 7집을 져 올해 안프로의 와신상담이 기대되는 바이기도 했다. 드디어 1국이 시작되었고 첫판이라 긴장한 탓인지 비교적 조용한 가운데 또각또각 바둑판에 돌 놓여지는 소리만이 정적과 어울렸다.
남는 바둑이었다. 흑백 돌 가림으로 백을 들게된 나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신중을 기해 두었다. 1시간여가 지나면서 상대인 요코야마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이따금씩 새어 나왔다. 그랬었다. 덤(6집 반)을 제외하고서도 열다섯 집 정도가 남아 보였다. 덤을 포함하면 스무 집 이상이 남는 것이다. 이제 마무리만 잘하면 된다고 숨을 돌리는데 요코야마가 내심 찝찝해 하던 곳을 정확히 찌르고 들어왔다. 어쭈, 훌륭하구먼 하는 기분으로 몇 걸음 뒤로 밀렸다. 그래도 내가 많이 남는걸 빨리 끝내지 뭐하나 하면서 팔짱을 끼려는 순간 귀퉁이의 끝내기가 들어왔고 생각 없이 덜컥 둔 수가 불필요한 수였다. 자책감으로 흔들리고 있는데 요코야마가 패를 걸어왔다. 패감이 몇 개 있었지만 빨리 끝내려는 욕심으로 패를 안 받았더니 우수수 귀퉁이의 몇 집이 더 날아갔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드디어 계가, 백41집 흑48집... 6집 반을 더해도 반 집 부족. 으아, 반 집 부족으로 지다니...
날렵하게 생긴 일본 팀의 여류가 날렵하게 돌을 놓고 있었다. 이세 가오리라는 일본 팀의 3번째 주자였다. 바둑판 위에서 여류의 흑돌은 날고 있었다. 맞은 편의 우리편 선수, 뭐 씹은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는 선수는 오늘 병원을 대타에게 부탁하고 왔다는 2회 진태훈 선배님. 바둑판을 다시 들여다보니 백의 대마가 아사하여 이미 승부가 난 바둑이었다. 와이고...
다행히 옆자리 하민호의 표정은 밝았다. 막 계가를 끝내고 있었는데 20여집 이겼단다. 그 옆자리에 계신 선생님은 이미 1승을 챙기시고 편안히 옆의 바둑을 구경하고 계신데 그 바둑이 시끄러웠다. 오세정과 고바야시 氏의 대결, 바둑돌로 바둑판이 부서져라 두드린다. 오세정의 패배, 기가 좀 딸린 것 같았다.
9승 9패, 이것이 1차 전의 전적이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으로 돌솥 비빔밥을 먹으면서 신조 氏는 자기들이 졌으면 비빔밥이 목으로 안 넘어갔을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바둑에서 일본의 급수는 평균적으로 한국의 그것에 비해 많이 높은 편이다. 가령 한국에서 3급 정도 둔다면 일본에서 3단이나 4단도 가능하다. 그래서 일본에서 오래 근무했던 오세정의 급수를 기준으로 선수들의 대진표를 만들었고, 1차 전에서 비겼다면 선수들이 비슷하게 짜여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합을 주최한 측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뭏든 이렇게 되니 오후의 시합에 대해 더 한층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처음의 서먹함에서 벗어난 듯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해지고 있었다. 특히 3회 권혁태 선배와 김용찬은 일본어가 어느 정도 가능한데다 쾌활한 성격 탓인지 분위기를 완전히 주도하는 듯이 보였다.
오후 1시 50분부터 2차 전이 열렸다. 각자 새로운 파트너와 돌을 가리고 인사를 나누었다. 1차 때보다는 덜했지만 시합장은 다시 새로운 정적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나의 상대는 오오타 氏로 작년에 한 차례 이긴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돌을 가리니 또 나의 백번, 오오타의 첫 수가 화점으로 떨어졌고 돌을 집으려는데 진행을 맡은 아라이 君이 오더니 우리 바둑의 기보를 남기겠다고 곁에 앉아 기록을 시작한다.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친구들이 이 기보를 들고 가서 두고두고 내 이름을 들먹거릴 걸 생각하니 앞이 더 안보였다. 오오타도 한층 긴장하는 것 같았다. 엎치락뒤치락 난타전 끝에 결과는 나의 반 집승, 1차 전은 반 집 때문에 울고 2차 전은 반 집 때문에 웃었다. 이거 무슨 소설도 아니고...
2차 전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댁으로 돌아가셨다. 점심식사 때부터 조금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았는데 3차 전까지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마침 심준석이 도착하여 선생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2차 전의 결과는 10승 8패, 우리 한국팀의 승리였다. 5급 이하 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승패를 떠나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세 사람의 이국 여성 탓이었을까? 사실 여성과 바둑을 두는 경우도 희귀하지만 그것도 이국 여성과 바둑을 둔다는 것은 정말 드문 경우일 것이다. 쌍립회의 기우들은 어쨌든 그런 기회를 만났고 나름대로 만끽하는 듯이 보였다.
드디어 3차 전이 3시 30분부터 시작되었다. 안관욱 프로와 히라오까 氏의 주장 전에는 시작 전부터 관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또각 또각, 3차 전은 시작부터 왠지 어수선했다.
상대는 쿠노리 君, 20대의 잘 생긴 청년이다. 작년에 두었을 때 겨우 이겼던 기억이 있었다. 나의 흑번으로 중공식 포석을 시도했는데 내용은 왠지 의도대로 풀려가질 않았다. 작년에 비해 한점 정도 실력이 는 것 같았다. 처절한 백병전 끝에 반면으로 내가 1집을 남겼다. 여섯 집 반을 공제하면 나의 5집 반 패배가 되는 것이다.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피차 최선을 다한 것 같았고 상대의 실력이 는 것은 칭찬을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실력이 좋아졌다고 칭찬해 주니 이 친구 무척이나 좋아했다.
안관욱과 히라오까의 주장 전은 중반전을 지나고 있었는데 대략 백중세로 보였다. 김원기가 다녀가더니 이번엔 정회준의 모습도 보였다. 2회 권순표 선배도 청주에서 동기인 진태훈 선배를 응원하려고 오셨으나 아쉽게도 진 선배는 3패로 결정이 난 뒤였다.
5시 30분, 마침내 3차 전이 모두 끝났다. 주장 전은 안관욱의 불계패로 아쉬움을 남겼으나 3차 전 전적은 10승 8패로 우리 한국팀의 승리였다. 종합 전적 29승 25패, 결국 종합 전적에서도 작년에 이어 우리가 승리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20여분간 안관욱 프로가 자신의 바둑을 공개 해설했고 시상식이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3승을 거둔 사람들에게 상품이 주어졌는데 우리측에서 세 사람(권혁태, 김철기, 이상규)과 일본측에서도 세 사람(히라오까, 고바야시, 스기타)이 상을 받았다. 다소 지루한(?) 기념 촬영을 끝으로 일단의 공식 행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저녁 식사는 한식집에서 우리가 접대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40명이 넘는 식구들의 움직임이다 보니 아무래도 혼잡한 면이 없지 않았다. 다행히 모두가 즐거운 가운데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았다. 어려운 영어보다는 바디 랭귀지가 더 잘 통하는 듯 보였고 한 두잔씩 마신 이후에는 국적의 구분이 불가능해 보였다. 바둑으로 인해 모두가 민간 외교 사절이 되는 하루였다.
거리에서의 이별식도 제법 길었다. 안관욱 프로에게 사인이나 촬영을 요청하기도 했고, 제법 진한 스킨십을 나누는 급조(?)된 한일 커플도 있었다. 모두에게 공통인 것은 이별의 아쉬움이었다. 내년에 쌍립회가 일본에 갈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으나 교류전은 어디에서든 열릴 것이고 전통은 이어질 것이었다.
일본 팀이 호텔로 돌아간 후, 선배님들의 주선으로 근처 호프집에서 우리들만의 뒤풀이를 했다. 모두가 다소 흥분된 듯한 표정이었고 하루동안 있었던 행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뒤늦게 응원 나온 권순표 선배나 정회준, 최규운들도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 이상으로 기뻐해 주었다.
뿌듯한 하루였고 자랑스런 하루였다. 우리측에서 참여한 선수들 가운데 최초로 참석하는 사람이 다섯 사람이었다. 참석을 위해 개인적으로 큰 불이익을 감수하신 분들도 많으시지만 대표적으로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신 최창학 선생님과 쌍립회와 무관함에도 고문의 자격으로 참석해주신 현민호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