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강원도 원주에 이어 전북 익산으로 가던 길...
전화로 부고를 받았다...큰 고모님이 돌아가셨다...
7남매의 가운데셨던 울 아버님...
이제 남은 형제는 두 여동생뿐인 셈이다...
울 아부지는 요 며칠새 또 눈에띄게 늙으실 것이다...
전남 벌교에서 문상을 끝내고 심야버스를 타러간 순천...
터미널은 순천대학교 앞이었다...
동기중에 순천대 교수가 하나 있을텐데...
물론 그냥 얼핏 스쳐가는 생각일 뿐...
(6반이었던 "여현"이 정보통신공학과 교수이다...)
버스시간이 45분이나 남았다...
터덜거리며 배회하다 발견한 "젊은" Bar...
버스타기전에 맥주를 마시면 낭패를 볼것이다...
"꼬냑...잔으로는 안파나요?"
신입 알바인듯한 귀여운 아이가 쪼르르 어딜갔다오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럼...마티니 한잔..."
예의 그 아이가 사라진 Bar에 매니저인 듯한 아가씨가 들어선다...
"죄송한데요...리큐르가 떨어져서..."
젠장...Bar로선 늦은 저녁도 아닐텐데...베르무트가 떨어지다니...
대신 추천할만한걸로 달라해서 나온 "블랙 러시안"...맛이 내 취향은 아니다...쩝...
집앞에 도착하니 새벽 3시 언저리다...
3일 연속의 지방출장에 마지막 문상까지 강행군한 피곤이 잔잔하게 몸을 감는다...
집...그리고 이젠 주말이라는 안도감은 짜증나는 피곤이 아닌 달콤한 피곤이다...
Bar에 눈길이 멈춘다...
"레미마르뗑 VSOP 한잔..."
XO의 맛을 상상하며 아주아주 천천히 VSOP 한잔을 마신다...
"마티니 한잔..."
씁쓸하면서...한구석 새큼한 맛에 침이 고인다...
내친 김에..."글렌피딕 15년 한잔..."
그렇게 다소는 엉뚱한 알콜 순례(?)를 천천히 마치고...
재즈음악을 뒤로한채...
나른함을 음미하듯 새벽귀가의 남은 몇걸음을 내디뎠다...
술에 대해서 사람들은 무수한 추억들을 얘기하곤 한다...
난 사실 특별한 추억이랄 것도 없지만...
(남들처럼...그저 그만그만한 에피소드들일뿐이다...)
그래도 명색이 자타가 공인하는 주당인 터에...
그냥...하찮은 "술이야기"쯤은 할 수 있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먼저..."마티니"...
몇일전에 어떤 친구가 외롭게 살아라고도 했었지만...
지금보다 많이많이 젊었던 시절...외롬타듯 휘적대다...
카페 한 집...카페 두 집...그렇게 순례하며 "외롭게" 마신게 마티니였다...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한 칵테일로 알려져있지만...
내 순례의 경험상...마티니는 정말로 맛이 천차만별인 칵테일이다...
제임스 본드가 007시리즈에서 늘상 애음하는 칵테일로도 유명하다...
원래는 진과 베르무트를 섞지만...
제임스 본드는 진 대신에 보드카를 넣은 보드카 마티니를 좋아한다...
둘째..."꼬냑"...
꼬냑은 영어로는 "브랜디"라고 한다...
꼬냑은 우리나라에선 그냥 "양주"라고 도매금으로 넘어가서...
"위스키"의 일종으로 치부되는 치욕(?)을 종종 겪기도 한다...
역시 아주아주 젊었던 시절...유럽출장길의 기내에서...
어디선가 주워들은 풍월로 용기를 내어 스튜어디스에게 "브랜디..."했더니...
헤네시 XO를 한잔 따라주었고...한번 더 용기를 내서 두잔째 꽁술을 먹었었다...
(외국에 오랜동안 가보질 못해서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XO를 여전히 주는지...)
그때의 그 맛은 여전히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꼬냑을 얼음타서 온더락으로 먹는다고 미친 넘이 되는건 아니겠지만...
꼬냑은 오히려 손바닥으로 덥혀서 먹어야 제맛인 술이다...
프랑스 꼬냑지방의 포도가 유명해서 "꼬냑"의 원산지가 된 셈이다...
그러니 원료부터 "위스키"하고는 아예 다른 술임에 틀림없다...
헤네시, 레미마르뗑, 까뮈 등이 일반적인 꼬냑 제조회사 브랜드들이다...
(헤네시는...佛語에는 원래 H가 묵음이어서...원어로는 "에네씨"라고 읽어야겠지만...
다들 그냥 영어식으로 "헤네시"라고 읽는게 일반적이다...)
VSOP, XO는 공인된 꼬냑의 품질등급으로서...XO등급이 많이 더 비싸다...
세째..."글렌피딕"...
술병이 삼각기둥의 독특한 형태여서 눈에띄는 병모양인데...
위스키 중에도 "몰트 위스키"로 유명한 술의 하나이다...
주당으로서 술맛을 조금씩 알아가던 젊은 어느시절...
유럽에서 오래동안 주재원을 했던 부서장의 집들이에서 처음 만난 녀석(?)이었다...
몰트위스키라는 종류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맛을 보았지만...
분명히 색다른 맛이라는 걸 느낄 수 있어서...술병을 유심히 째려보며 이름을 외우려 애썼던 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후의 몇년간...해외출장때는 항상 면세점에서 글렌피딕만을 고집해 사왔었다...
(당시엔 초록색 라벨의 12년짜리밖에 없었던 기억인데...요즘엔 골드라벨의 15년짜리도 있다...)
그러고 보니...말만 "주당"이지 술에 대해서는 별반 아는 것이 없음이 지레 민망스럽기도 하다...
중년의 세월이 깊어지면서...이젠 그냥 "쏘주"가 최고의 술이 되어버렸으니
다양한 술공부(?)를 할 나이는 지나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술에 대해서 많이 알거나...특정한 술에 대해서 일가가 있는 친구들이 있으면...
그저 말과 글뿐인 지식만이라도 귀동냥 눈동냥해봤으면 싶기도 하다...
쏘주잔 기울이며...다양한 술이야기와 술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