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다음의 세상.
많은 정치운동은 대개 부당한 기득권과의 싸움으로 묘사되고 약자와 강자의 싸움으로 묘사됩니다. 물론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로 묘사하지요. 부당한 짓을 당하는 사람은 약자니까요. 이건희 씨가 설사 좀 억울한 게 있다고 하더라도 노조결성에 반대한다며 단식투쟁을 한다면 웃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실은 세상은 항상 강자의 뜻대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민주화가 된 것도 저는 이렇게 봅니다. 강자와 싸워서 약자가 이겼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실은 시대의 흐름을 쫓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약자가 되어서 강자의 뜻대로 사회가 흘렀다는 겁니다. 즉 민주화를 이야기한 사람이 강자이기 때문에 세상이 그렇게 변한다는 것이죠.
그럼 그게 어떤 강자냐. 해방 이후에 교육받은 사람들이 독재는 싫고 민주주의 하자고 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는 대개 졸업하고 대학생도 흔한 그 세대는 군사문화에 적응하고 살 수 있을 체질이 되기 어려웠던 것이죠.
웬 강자 약자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세상이 더 바뀌려면 거기에는 명분이상으로 인적 물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과 현 사회가 불화를 일으킬 때 세상은 바뀌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세상은 안 바뀌는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떨까요. 과연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요? 뭐 몇몇 분들은 당장 천국 만들 수 있는데 노무현이 배신했거나 역사적 인식이 천박하거나 능력이 없어서 못한다고 말합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까지 말합니다.
적어도 제게는 손톱만큼의 설득력도 없습니다. 그들은 시켜보면 사람 죽일 것처럼 운전하는 사람이 옆자리에 앉아서 깜빡이가 늦었느니 위험하게 운전한다느니 지금 너무 과속이라느니 왜 이렇게 늦게 가느니 길을 잘 못 찾느니 하는 소리 늘어놓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명박, 박근혜의 한나라당이나 민노당이 노무현 정부를 공격한다는 것은 너무 희극적입니다. 그들은 대개 한국 밖을 본 적도 없거나 아니면 어디 한 나라만 보고 와서 그 나라 찬양에 밤을 새우거나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문화, 경제, 역사의식이라곤 손톱만큼도 느껴지질 않습니다. 시드니에 오페라 하우스 있으니 우리도 짓자는 식의 발언이나 계속 하지요.
한국이라는 사회는 당연히 여러 가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이 합의하고 나아갈 수 있는 테두리를 그릴 때 어디까지 그릴 수 있는가. 저는 노무현이 그린 테두린 어찌 보면 별거 없다고 봅니다. 왼쪽오른쪽 가리는 게 아니라 일단 기본적 합리성이라도 갖추자는 겁니다. 무슨 이데올로기 운운하기 전에 자기모순성은 없는, 기본적 투명함과 책임감은 있는, 기본적 절차와 법질서는 지켜지는 그건 해야 하지 않겠냐 이겁니다.
그 정도 가지고 세상 확 안 뒤집어집니다. 많이 바뀌었다면 바뀐 거지만 우리 경찰 지휘 따르자고 했는데 경찰이 전부 비리경찰이면 어쩝니까. 물론 비리경찰 없애야지요. 그러나 그러면서도 경찰에 협조하는 게 먼저일 수밖에 없습니다. 헌재가 한심해도 법은 지켜야지요. 국회가 한심해도 그들이 가진 권리라고 야단 부리면 봐줘야지요.
그럼 다음 정권은 그것보다 더 나갈 수 있는가. 한국인들은 그것보다 더 나가고 싶어 하는가. 그것이 진짜 질문이라고 봅니다. 부동산투기도 사실 국민의식이 어느 정도 성숙하면 잡힙니다. 피라미드 판매 같은 게 유행하면 속인 놈이 잘못이지만 거기에 뛰어드는 국민들도 문제입니다. 우리는 과연 로또 같은 세상을 버리고 서로가 서로의 보험이 되어주는 안전한 세상을 원하는가. 진짜 그런가.
아직은 사람들이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희망도 보이긴 하죠. 외국에 자기 자식만 잘 키우겠다고 조기유학 보내는 사람들이나 나가 살아본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잘 안된다고. 우리나라에서 잘 살아야지. 한국이 소중하다고. 조중동은 야단합니다만 종부세도 잘 내지 않습니까. 신세계 같은 기업은 법대로 세금 내겠다면서 세금 냅니다. 그리고 아주 잘나가고 있습니다. 반대로 삼성은 흔들립니다. 주가가 엄청나게 오르는 동안 삼성전자만 제자리입니다. 이런 게 다 희망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새 시대를 열 물적, 인적 자원이 될 우리 사회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저는 그 사람들이 네티즌이라고 믿습니다. 네티즌이 사회변화의 중심에 있고 그들의 물적토대가 조금만 더 튼튼해지고 그들의 결속이 조금만 더 튼튼해지면 세상은 변할 준비가 된다고 봅니다.
올해 말쯤이면 대선입니다. 그것만큼이나 기념비적인 것은 무선인터넷이며 DMB며 초고속 인터넷이 세상에 널리 퍼져서 인터넷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되는 것도 올해 말쯤일 거라고 봅니다. 그것은 단순히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세상을 많이 아주 많이 바꿀 거라고 저는 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놈의 한국사회는 언제나 아슬아슬한 액션영화 보는 것처럼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대선이 먼저일 것이냐 사회적 변화가 먼저일 것이냐. 그저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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