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 통폐합 강행] ‘5共 악몽’이 떠오른다
[경향신문] 2007년 05월 23일(수) 오전 02:02 가 가| 이메일| 프린트
정부가 22일 확정한 ‘기자실 통·폐합 방안’을 놓고 여야 정당, 학계·법조계·언론계·시민단체 모두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배경이 의문이다. 해답의 키는 노무현 대통령이 쥐고 있는 듯하다. 주변에선 “(통·폐합 방안은) 노대통령 언론정책의 최종 결정판”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십년 쌓인 언론에 대한 불신·분노·적대감의 사감정이 시스템으로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실을 통·폐합하는 내용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성일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 “내가 이름을 외우는 기자는 딱 세 사람”이라고 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첫 오찬 자리에서다. 그러면서 “김○○, 이◇◇, 우×× 기자”라고 실명을 댔다. 대통령은 이들을 1990년대 초년 정치인 시절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던 기자들로 기억했다. 취임 다섯달 만에 ‘장수천’ 보도를 걸어 언론사들을 상대로 30억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낸 대통령이다. 현직 대통령이란 직책보다 자연인으로서의 감정이 앞섰다는 비판을 받고 취하했지만 “퇴임후 다시 내겠다”고 했다.
소송은 취하했지만 노대통령의 언론정책은 관가의 문을 잠그고 기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 모습이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 선진 시스템’이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개방형 브리핑제’ 도입으로 기자실 폐지, 취재 제한, 공무원에게 보도경위 추궁 등 단편적 조치에서 나아가 전 행정부처의 브리핑룸마저 통·폐합하겠다는 참여정부식 언론정책의 완성이다. “언론에 대한 신종 보복폭행”(국민중심당 이규진 대변인)이란 말이 나올 만하다.
이 방안이 정부 정책으로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은 더 심각하고 중대하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통·폐합 방안’이 상정되고 통과되기까지 단 한 사람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중의 우려를 전하는 목소리도 없었다. 대통령만 빼고 각계 각층이 우려하는 주요 정책이 확정되는 동안 정부내 반대 목소리나 제동장치가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출범 초기 “모든 국무회의 토론 과정도 공개하겠다”고 호언했지만 토론도 없었고, 공개도 하지 않았다.
이 방안은 청와대와 국정홍보처의 386 핵심 관계자 10여명이 대통령의 뜻을 뼈대로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과정에서 흔한 공청회나 설명회 한 차례 열리지 않았다. 정당·학계·언론·시민단체 어디도 관련부처로부터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설명을 듣지 못했다. 절차의 투명성을 외면한 밀실행정의 표본이다.
정말 시행을 위해 내놓은 조치인지 실효성도 의문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이 안은 오는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대선주자들을 포함한 여야 정당은 이미 통·폐합 방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차기 정권에서 수정 또는 폐기가 확실시되는 안이다. 시행 수개월 만에 ‘사망’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화풀이로 해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홍보처는 왜 있어야 하는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5공 언론통제의 악몽을 떠올리는 시각도 있다. 홍보처가 정부 정책의 홍보전위대라는 거듭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론장악기구로 나선 데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단국대 손태규 교수(언론홍보)는 “모든 언론이 자기를 이해하고, 감싸주기를 바란 노대통령의 욕심이 정부와 언론 관계를 파행으로 치닫게 했다”며 “참여정부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초법적·탈법적 언론탄압과 달리 합법을 가장한 방법으로 언론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래용기자〉
[반론] 기자실 관행과 언론자유가 무슨 상관인가
번호 311805 글쓴이 국정브리핑 조회 5025 누리 1604 (1604/0) 등록일 2007-5-22 18:16 대문 35 톡톡 1
기자실 관행과 언론자유가 무슨 상관인가
언론 자유도가 높은 선진국의 정부 건물 내에는 기자실이 사실상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기자실 대신 브리핑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국민의 알권리는 충분히 충족되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개방형브리핑제도 도입 4주년을 맞아 국내외 운영실태를 점검하고 취재지원시스템의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27개국의 브리핑제도와 기자실 실태를 조사했다.
27개 OECD 국가 중 기자실 운영 국가 단 3개국
조사결과에 따르면 행정부 건물 내에 기자실을 운영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이탈리아 3개국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국가는 정부 내에 기자실을 두고 있지 않으며 대통령비서실이나 총리실 등 정부 내 핵심부서를 중심으로 브리핑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나머지 국가는 의회브리핑실(영국, 호주, 캐나다, 헝가리 등 내각제국가)이나 언론단체건물(독일)을 이용하고 있다.
또한 기자실이 있는 3개국도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달랐다. 미국의 경우 국무부, 국방부, 법무부 3개 기관에만 기자실이 설치돼 있을 뿐이고 이들 부서와 농무부, 교통부에만 브리핑실이 설치돼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도 총리실에 통신사 기자들을 중심으로 6명만 상주하고 있을 뿐이다.
취재시스템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거의 전 부처에서 우리의 기자실과 비슷한 ‘기자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폐쇄성 등 기자실이 가진 문제점은 2001년 나가노현의 기자클럽 폐쇄와 2004년 국경없는 기자회의 연례보고서, 같은해 기자실 개방 법정소송 등에서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3년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도입했다. 이 때 도입된 브리핑실은 37개. 그러나 개방형 브리핑제도의 당초 취지와 달리 일부 기관의 경우 송고실이 출입기자실처럼 되고 있어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기자 원하는 대로 공무원 만나야 한다?
취재기자들이 공무원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야 국민의 알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2003년 정부는 개방형 브리핑제도를 도입하며 공무원의 개별인터뷰나 사무실 취재를 제한했다. 이는 정부의 정보가 개인적 네트워크로 유통되는 관행을 개선하는 동시에 확정되지 않은 정책을 주관적으로 해석, 국민에게 혼선을 불러일으키는 폐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기자의 공무원 취재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은 아니었다. 기자가 공무원을 개별적으로 인터뷰할 때에는 부처 공보관을 통해 사전 약속을 잡도록 했다. 물론 전화 취재를 할 수도 있다. 기자는 필요한 경우 담당 공무원에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 기자의 취재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선진국의 경향을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다. 여러 선진국은 기자의 개별공무원 취재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물론 체코나 노르웨이처럼 공무원 개별취재가 가능한 곳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취재와 인터뷰는 공보관실을 경유해야 한다.
심지어는 스위스 등 공무원 개별취재가 아예 불가능한 곳도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 헝가리 등에선 공무원이 사전협의 없이 임의로 취재에 응하는 경우 서면경고나 내부 징계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 국무부 인터뷰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국가는 기자의 사무실 임의 방문도 불허하고 있다 사전 약속이 돼 있을 경우에 한해 접견실 등을 이용한다. 예외적으로 덴마크는 조사대상 국가 중 유일하게 정부 부처내 사무실 방문을 허용하고 있으나, 이는 언론사별 쿼터제로 배정된 소수의 기자들에게만 가능한 것으로 나머지 기자들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
국제사회, 폐쇄적 기자실 운영 폐단 지적
한편 일부의 주장대로라면 행정부 내에 기자실을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보다 언론환경이 더 좋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해마다 선정하고 있는 언론자유 순위에 따르면 2006년 미국과 이탈리아, 일본의 언론자유 순위는 각각 53위, 40위, 51위였다. 우리나라의 순위는 31위였다.
특히 우리나라 기자실 제도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기자클럽 제도 등이 순위하락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RSF는 일본에 대해 “배타적인 기자클럽 제도와 증가하는 민족주의가 일본이 이룩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며 “일본은 전년도보다 14계단 떨어진 51위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폐쇄적인 기자클럽은 2003년부터 지적됐던 문제였다. RSF의 2004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정·재계는 주요 언론인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기자클럽을 유지해왔다. 이와 관련 EU는 2003년말 기자클럽이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방해하는 주요한 장애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폐쇄적인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한편 같은 보고서는 2003년 한국이 도입한 개방형 브리핑 제도와 관련, 점유율이 높은 언론은 변화를 반대하고 있지만 군소 언론은 과거에는 만나기 어려웠던 고위관료를 만나는 등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대해 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조사결과를 살펴볼 때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세계적 관행에 조응하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자실이라는 존재는 언론자유와 상관이 없다. 기자실이 없어도 세계 제 1위의 언론자유를 구가하고 있는 아일랜드나 아이슬란드 등의 경우가 이를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