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나
며칠 전 래순이 원기와 일산 병원 김종수 상가에 갔다가 박윤준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상가에서 원기와 윤준이가 연락이 되어 윤준이네 집 앞으로 세 사람이 찾아간 것이다.
노천 카페인양 길가에 파라솔과 탁자, 테이블을 펼쳐 놓은 호프집에 앉아 우린 제법 오랜 시간을 떠들었다. 여러 가지 주제를 안주화 시켰는데, 그 중 으뜸은 단연 윤준이의 감리교와 관련된 종교에 관한 것이었다.
고교시절에 도서관 앞에 있던 무슨 정자에서 정순택(현재 수사 )이를 가운데 놓고 다른 친구들이 알량한 과학 지식을 동원해 가며 카톨릭을 비판하던 모습과 매우 흡사하게 느껴졌다. 원기나 래순이나 알아주는 말빨임에도 윤준이의 그것 또한 전혀 못지 않았다. 구약 성서를 흠집내고, 네온 십자가를 부러뜨려도 결코 대화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이 되고 시간이 寅시경이 되어서야 결론 없는 대화가 끝났다.
그 다음날인가, 임플란트 때문에 인호의 병원으로 가던 나는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맞나?)를 깨달았을 때와 흡사한 깨달음은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종교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잇몸 뼈에 나사못을 박으러 가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하느님을 찾고 있었다. 박인호 우신치과 원장은 나는 아직 X-ray로도 보지 못한 나의 얼굴 뼈에 드릴로 구멍을 뚫을 것이고 거기에 쇠 못을 박을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사이보그가 되는 것인가!
아무리 차분해 지려고 해도 심란함은 점차로 더해오고 자연스레 하느님이 찾아지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인간이 약해서, 의지하고픈 누군가가 필요해서 하느님이, 알라가, 또 석가모니가 계신 것이었구나. 그런 마당에 구약에서 노비를 인정하는 글귀가 있으면 어떻고, 목사들끼리 신도수를 헤아려서 교회를 장사하면 또 어떻단 말인가, 하느님이 필요한 건 바로 나인데...
나는 황급히 원기에게 전화를 걸어 그 기쁜 깨달음을 전파했다.
*그 둘
골프는 직업상 이따금씩 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별로 즐겁지도 않고 그래서 그런지 실력도 매번 그만그만하다. 라운딩 시의 비용도 적지 않지만 고속도로에서 보내야 하는 체증 시간이 더 짜증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그것은 TV를 통해 골프중계를 보는 것이다. 7,8년 전, 박세리가 혜성처럼 나타나면서 나의 새벽 골프중계 시청의 병은 시작되었는데 완전 중증이었다가 최근 고맙게도(?) 우리 선수들이 부진한 덕에 그 병은 어느 정도 치유가 되려는가 하는 참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새벽 LPGA 유에스 오픈, 기적이 일어났다.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를 지켜 신문과 인터넷을 도배했던 우리 위병욱 선배(3회)의 딸, 성미는 완죤히 무너지고 그 자리에 외모도 이름도 촌스럽기 그지없던 버디김(김주연)이 나타나 당당히 우승 트로피를 움켜 쥐었다.
LPGA 처녀 출전에 그것도 최고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이라니...
누가 보더라도 그녀에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지은 것 만큼은 사실이지만...
하지만 그녀는 알고보면 그렇게 신인이 아니다. 박세리가 우승하던 98년도에 그녀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는 등 2000년까지 국가대표를 지냈으며 더 큰 무대에서의 활약을 위해 비행기를 탄 것이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김주연 선수의 이야기를 꺼낸 본론은 이제부터이다.
마지막 라운드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녀의 뒤에는 모건 프리셀이라는 17살의 겁없는 아마추어가 추격을 시작한다. 마침내 4오버파로 동타를 이루었고 분위기 상 역전이나 그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18번홀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거의 200야드 가까운 쎄컨 샷이 벙커에 빠졌고, 잘해야 보기라는 생각으로 경기를 막 포기하려는 참에 그녀의 벙커 샷이 30야드나 떨어진 포대그린의 홀컵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보기가 버디가 되는 순간이었고 새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벙커샷을 하라고 한다면 홀인된 확률이 얼마나 될까?
1%나 될려나? 아니면 0.1%?
완전 로또 복권 이었네. 누구는 복도 많네. 그런가? 그런 것인가?
적어도 나의 견해는 '아니다'이다.
후반에 그녀의 티샷은 계속 러프에 빠지다시피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녀는 레이업을 했다. 레이업은 공을 치기 쉽게 페어웨이로 꺼내는 것인데 아다시피 골프는 타수가 적은 놈이 이기는 게임이다 보니 레이업은 보기로 연결되는 것이고 뒤에서는 팔팔한 아마가 추격을 하고 있는 마당에 내 눈에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과거의 세리나 지은이였다면 그중 한둘 쯤 멋지게 그린에 올렸을 텐데'하는 마음에 냉수나 들이키고 있을 즈음 18번 홀의 기적같은 버디가 탄생한 것이었다.
무엇이었을까 그 버디는? 끝없는 레이업, 다시말해 그 징그러운 인내심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을까?
우리네 인생과 견주었을 때, 끝없이 정도만을 걷다보면 그 같은 행운도 찾아온다는 일종의 계시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