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이 전화해서 뭐라고 하던가요?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며, 아래와 같이 내 질문에 대답을 했다.
-오빠가 최근에 계절(11월) 때문인지 외로움을 좀 타는 것 같으니까, 저보고 책임지라고
하던데요?
-그래요? 짜식이.... 오빠 얼굴에 먹칠을 하다니....뭐, 여동생은 두 달 뒤에 약혼식을 하는데
그 장소에 함께 갈 여자 친구가 없으니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여
자나 쉽게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 동생에게 제 얘기를 하신 것 보니까 제가 아주 해당사항이 없는 건 아닌가 보죠?
- 제가 먼저 그 쪽 이야기를 동생에게 한 건 아니지만, 동생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고 따라
서 지금 전화를 통화하고 있는 건 사실이죠.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농담을 몇 마디 더 주고받다가 내가 전화를 건 다음 날이 마침
목요일이어서 금요일에 명동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시간은 오후 7시였다. 회장님께서
6시 30분쯤 퇴근한다는 거였고, 회장님이 퇴근해야 비서인 자기가 퇴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여동생의 말로 들은 그녀와 같은 학교 연극 동아리 선배와의 이별의 사연은 이랬다. 내 여
동생의 친구 **이는 성균관 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하고 3학년 올라갈 때 바로 같은 성대 법
대 남학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남자 형?, 오빠?가 3수를 하고 군대를 갔다와서 3학년 이
기 때문에 서로 다섯 살의 나이 차이가 났었단다. 복학하고 둘이서 눈이 맞은 모양이다.
둘은 그렇게 3, 4학년을 같이 캠퍼스 커플로 다니고 학교를 졸업한 다음, 내 동생 단짝 친구
는 아까 얘기한 바와 같이 '동양고속 건설 회장 비서실'로, 남자 친구는 학교 다닐 때의 연극
반 동아리 경력을 살려 KBS연출(피디) 밑에 에이디(조연출)로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둘은 자주 만나려 노력은 했지만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에이디’라는 직업이 시간을 내기
에 그리 녹록치 않게 잡일이 많은 데다가 대기업 회장 비서라는 직업이 회장님이 퇴근을 하
셔야 퇴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약속을 해 놓고는 서로 시간을 낼 수가 없는 일이 자주 발
생해서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단다.
아무리 그래도 학창시절의 캠퍼스 커플인데 그리 쉽게 헤어질 수는 없지 않았겠는가? 둘 사
이에 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도 **씨를 만날 기회가 오려는지 둘은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사연인 즉 이랬다. (AD)에서 (PD)로 승진하고 생일을 맞은 어느 날, 둘은 만나기로 약속을
했더란다. ** 씨는 田山(전산)-내 여동생 남자친구 이름이고 지금도 PD로 근무하고 있느니
이 글에 이름을 올리기가 좀 조심스럽다. 여동생 친구는 계속 **(익명)으로 하는 게 좋겠다.
-씨에게 줄 선물과 꽃다발을 미리 준비하고 회장님이 퇴근하시기만 학수고대 했으나 그날
따라 외부에서 손님이 오시기로 했다면서 퇴근을 늦게 했다는 것이다.
승진과 생일인 그 약속이 있기 바로 전 약속에서도 회장님이 다른 때보다 늦게 퇴근을 해서
‘전산’ 이라는 사람이 무려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때 그가 말하기를
앞으로는 제발 나를 30분 이상 기다리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경고성 발언을 했었
다는 거였다.
그런데 또 이 중요한 날에 1시간을 넘게 늦은 거였다. 한 시간 늦게 나타난 **씨가 생일 선
물과 꽃다발을 내밀며,
- ‘전산’ 씨, 아니 오빠, 승진과 생일을 진정으로 축하해요.
하자 그 친구 ‘전산’ 이라는 자가 눈썹이 위로 치켜지고 양미간에 주름이 생기며, 선물은 다
시 그녀의 손에, 그녀가 전해준 꽃다발은 약속장소- 롯데 백화점 커피숖 -의 쓰레기통에
거꾸로 처박고 나간 거였다. 둘의 이별이었던 것이다. (계속)
2011.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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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 이소라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