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그러니까 12.12 사태 30주년이 되는 날에 밴쿠버 우신 송년모임이 있었다.
재미있는 건, 내가 여기서 7년을 살았는데 이런 모임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여기 한인들과 별다른 모임이 없이 지내고, 한인교회에도 안나가기 때문에,
그리고 여기 한인신문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우신고등학교 동문회가 있다는 걸 모르고 지냈는데
이번에 우연히 한인신문을 보다가 모임이 있다는 공고를 발견하는 행운을 얻게 된 거지.
토요일 저녁,
모임 장소도 우리 집에서 좀 먼 곳이라 약간 망설임도 있었지만
'처음이니 한 번 가 보자' 하는 마음으로 혼자 나갔다.
텅빈 하이웨이를 30분 넘게 달려 목적지에 도착해서
모임 장소인 꽤 큰 일식집 안으로 들어서서 '우신고' 모임을 찾으니
이미 몇 사람이 와 있었고, 부인인 듯한 사람들도 와 있었다.
(이런 모임이 처음이라 몰랐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부인들이 항상 같이 온단다.
어찌보면 일종의 '대리운전' 용 이랄까? ^^)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나까지 해서 10명 이나 모였다.
1회 1명, 3회 3명, 4회 1명, 5회 1명, 8회 1명, 9회 2명, 11회 1명
일식당은 8회 후배가 하는 집이었고,
이민 온 지는 길게는 20년부터 짧게는 1.5년 정도.
그 중에 9회 후배는 자동차 바디샾을 하는데 전에 차 때문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차 고치러 갔을 때도 집사람과는 이미 구면인 인연도 있었고.
게다가 11회 후배는 집사람 이름을 대니까 자기도 이민 초기에 신세졌었다고 말하면서
우리 부부가 잘 아는 사람의 처남이라고 얘기하더라고.
(집사람이 지금의 심리상담 일을 하기 전에 이민자 정착을 도와주는 일을 했었거든.)
그 뿐인가?
1회 선배는 지금도 가끔씩 가는 한국 수퍼 사장님이시고...
참, 세상이 좁더라.
하기야 기껏해야 5만 정도의 한인 인구이니 조금만 건너도 서로 연결이 되긴 하지만.
아무튼 좋더라.
고등학교 동문이니 처음부터 위아래 딱 갈리고
옛 얘기하면서 웃고, 마시고, 즐기고,
식당 주인이 모임의 한 사람이니 시끄럽게 해도 아무 걱정이 없고....
이민사회라는 게 어찌보면 한국에서의 '계급장' 다 때고 지내는 곳이라
한국에서 뭐했는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
그러니 우린 고등학교 졸업부터 밴쿠버 올 때까지 모든 걸 다 때버리는 모임이니
얼마나 편하겠냐.
그래, 그래서 참 오래간만에,
여기서, '용규야' 하면서 반 말도 들어봤다.
오래간만에 '형님'이란 말도 아무 무리없이 목에서 나왔고.
아쉬운 건 ,
내가 아는 한 4회가 두 명이 더 있는데 못왔다는 것.
장기영, 한재일이 살고 있는데 말이야.
연락은 했는데 바빴나 보다.
이 외에도 1회 선배가 두 분 더 계신다고 하고,
24회한테서도 연락이 왔었다고 하는데 오진 않았다.
여기 홈피를 들어오면서
한국에서 모임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모이는 거 부러워하며 손가락만 빨았는데
나도 고등학교 동문회가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1월에 또 모이자고 하는데 벌써 마음은 거기 가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