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그 깊은 심연, 아니, ‘憂鬱의 늪’ , 저기 끝이 보인다. ! ”
펜을 다시 잡은 게 만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자타가 공인하다시피 나는 이 홈피의 인기
작가(김주동 貴友 公認)였다. 무려 600 여 쪽에 이르는 - 세 권으로도 출판이 가능하다. - 장편
소설을 연재했으며, 논설문, 수필, 그리고 수많은 기행문, 헤아리기 어려운 댓글들........ 아마
쟁점토론방의 주인인 ‘박인호’를 제외하면 내가 가장 많은 글을 올린 사람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던 내가 여기에 다시 펜을 잡은 게 만 2년만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만 2년 전에 평소 친하던 동료교사들과 설악산에 갔었다. 전 날 경치에 취하고
분위기에 어울려 과음을 하고 신흥사 구경을 마지막으로 관광지 밖을 나와 늦은 아침을 먹
으려고 식당에 갔었다. 전날 마신 술이 과해서 물을 들이키려는데 텔레비전에서 긴급 뉴스가
자막으로 뜨는 거였다.
“노무현 대통령 오늘(2009. 05. 23.)아침 서거”
순간 나는 들고있던 물컵을 떨어뜨릴 뻔했었다.
‘아, 아, 걱정하던 일이 드디어 일어났구나 !’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다녀온 후부터 나는 그의 건강을 계속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누구보다도 그 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나는, 검찰 버스에 타면서 했던 아주 짧은 인
터뷰를 통해서 그의 불행(부엉이바위)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계백 장군을 가장 존경해왔다. 남자로서 그 분의 삶과 운명에 경외는 아닐지
언정, 풍전등화의 조국 앞에서 보인 그의 장엄한 최후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사람들은 많
을 것이다.
그렇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뻔히 앞이 보이는 데도, 세 번이나 남과 다른 선택을 할 때부
터, 아니 사실은 그 이전부터, 나의 존경하는 인물 1위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물론, 계백은 역사에 윤색된 사람이지만, 그 분은 동시대의 인물임도 작용했
을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동료들과 한 마디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가 죽었는데 나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저 깊은 마음속 심연에서 외치는 소
리가 들렸다. ‘ 아아 희망의 끈 한 줄이 끊어졌구나’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뜬 나는 다른 날과 확실히 달랐다. 먼저 일어나기가 싫었다. 평소에는
일찍 일어나서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했었는데,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귀찮아진
것이다. 어떻게 운전을 하고 학교에 출근했는지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서거, 서
거라....머릿속에는 계속 이 생각만 뱅글뱅글 맴돌았다.
그 이후로 나는 아주 깊은 심연의 우울에 빠지고 말았다. 우선 뭔가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
워졌다. 수업을 하다가 중간에 말하던 내용을 잊기도 하고, 밥을 먹으려고 해도 입맛이 없
었다. 아니, 침샘에서 침이 분비되지가 않아서 억지로 입에 퍼 넣은 밥알갱이들이 입안에서
침 없이 떡처럼 입천장에 붙어버렸다. 당연히 삼킬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잠을 잘 수가 없는 고통이 계속 이어졌다. 어쩌다 힘들게 잠깐 잠이 들어도 또다
시 가위눌려 깨기가 일쑤였다. 잠을 못 자고 먹을 수 없으니 삶의 질이 바닥일 수밖에.....
그러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만 2년을 살았다.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케고르)에 걸린 것이다. 아니 재발한 것이
다.
나는 27살 시절에, 이미 그 병을 앓은 적이 있었다. 정신과에 일주일 동안 입원을 했던 경
험이 있다.
그 <여자> 때문이었다.
( TO BE CONTINUED )
2011. 06.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