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의 약간은 멜랑꼴리한 계절의 ------------ 나는 사실 11월이 되면 내 생활의 상태와는 관계 없
이 매년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늘 계절을 앓는다. 그 때마다 저 떨어지는 낙엽들이 슬퍼
서 한 잔, 떨어져 이미 밟혀서 부서진 낙엽 위로 앙상해진 가지들이 처량하게 보여서 또 한
잔, 다가올 겨울의 추위가 나를 더욱 외롭게 할 것 같아서 한 잔, 나는 어쨌든 술 없는 가
을을 견디기 어려워해왔다. 나만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난, 사실 언제나 시끌벅쩍한 모임 뒤
에 찾아오는 고독이 더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즐거운 만남의 끝에 찾아오는 외로움을 달래
기 위해, 잠들 때까지의 허탈한 고독을 이기기 위해 술을 자주 찾는지도 모르겠다. 참 아이
러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거워할 때도 많으면서, 새벽 두 시의 FM 라디오 방송 끝나는
DJ의 마지막 맨트와 애국가 소리가 정말 싫었다. 그 땐 그랬다. 그 이후에 올 나 자신과의
가까운 시간이 늘 두려웠다. 쉽게 오지 않는 잠을 부르는 시간들을 난 못 견뎌했으며, 지금
도 그런 시간들을 싫어한다. 아니 혼자 와서 혼자 세상을 끝내야 한다는 당연한 실존의 문
제를 늘 저 어둠과 더불어 두려워했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게 아닌지.
------------- (멜랑꼴리한 계절의)분위기와는 달리, ‘로즈 가든’을 나온 그녀와 나는 미도파 백화점
맞은편에서 택시를 탔다.
그녀의 집은 '군자동'이었다. 다행히 그 날은 군자동 JC(청소년 회관) 쪽으로 가는 손님 한
사람이 앞 자리에 탄 택시가 있어서 합승으로 그 녀의 집 앞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은 큰길가에서 이면도로로 걸어서 5 분쯤 들어간 곳에 있었다.
- 저기 연립주택이 우리 집이에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깔끔한 분위
기를 느끼게 하는 집들이 있었다.
- 그래요. 오늘 참 즐거웠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계속 뜻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친구 오빠니, 오빠라고 해야 하나요?
- 이름에 ‘-씨’ 를 붙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호칭일 거 같습니다.
- 아까 이야기한 대로 오늘 좋은 계획을 세워서 내일 회사로 전화하겠습니다.
- 네. 그렇게 하세요.
- 그럼, 좋은 꿈 꾸세요.
- 너무 먼 곳에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안녕히 가세요.
사실 그녀와 큰길에 내렸을 때 그녀와 칵테일이라도 한 잔 하자고 하거나, 혹은 멀리까지
데려다줬으니 커피 한 잔 사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웬지 오늘은 좀 여운을 남기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생면부지의 사이였다가 처음 만난 관계도 아니고 서로가 어느 정
도는 이미 알고 있기에, 그리고 내일 또 만나자는 약속을 이미 한 상태에서 오늘의 만남을
너무 길게 갖는 것은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녀가 연립주택 입구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 그녀와의 만남이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 해서 보는 것처럼 회상이 되었다. 좌석
버스로 서울역까지 간 다음 서울역에서 만리동 고개까지 일반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계속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가 내게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
이 자꾸 깊어졌다. 그녀가 웃을 때 보이는 보조개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뜰 때 보이던 속
쌍꺼플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장 치마 아래로 보았던 엷은 까만색 스타킹을
신은 예쁜 다리가 내 마음을 아주 설레게 하는 것을 숨길 수 없다. 그래, ‘어쩌면 미경 씨
를 사귀기 위해 그 많은 만남이 있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다.
다음날, 즉 토요일 1 교시 수업을 마치고 2교시가 수업이 빈 시간이기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 네. 비서실입니다.
- 접니다. 하하하, 오빠랍니다.
- 호호호. 집에는 잘 들어가셨나 보죠?
- 그러니까. 전화를 했겠죠? 오늘 시간을 낸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몇 시쯤 퇴근하십니까?
- 12 시쯤인데, 직책상 확실한 퇴근시간을 장담하기는 어려워요.
- 그럼. 내가 학교에서 12 시 반쯤에 나가니까 1 시 정도로 약속을 하면 되겠네요. 회사 근
처에서 만나는 게 어떨까요.
- 그러죠. 그렇게 하면 저도 편하고 좋을 것 같네요. 저--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서울역
지하 상가에 ‘롯데리아’가 있거든요. 거기서 만나면 좋겠습니다.
- 그게 좋겠군요. 그럼 오후 1 시까지 가겠습니다.
약속한 시간 1 시까지 롯데리아로 갔다. 그녀의 회사 ‘동양고속 건설’ 에서 불과 7, 8분 거
리에 있는 곳이었다. 통상적으로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인 15 분이 지나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를 초조하게 하지 않겠다는 배려에
서였다. 미리 준비한 ‘라즈니쉬’ 의 ‘길 없는 길’ 이라는 책을 읽으며 무료함과 답답함을 달
랬다.
책의 내용이 “우리는 태어난 적도 없고, 설령 태어났다 하더라도 숨쉬는 거 자체가 행복인
데 무슨 욕심이 더 필요하냐” 고 말하는 내용이라, 그녀가 조금 늦는 불편함쯤이야 오히려
유행가 가사처럼 ‘기다리는 기쁨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콜라를
한 잔 마시면서 라즈니쉬를 읽으며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약속 시간 30 분이 지나서 그
녀가 무척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그녀와 5년간 사귀었다가 헤어졌다는 사람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거 같았다. 그러나 내게는 그 기다림의 30분이 그렇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을 스스로 읽을 수 있었다. 만나는 설레임,
그거야말로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 것이다.
- 오빠, 미안해요. 제가 모시는 분이 오늘 예상보다 퇴근을 늦게 하셔서요. 전화를 했었는
데, 다방이나 레스토랑과 달라서 연결이 수월치 않더군요. 약속 시간을 잘 지키려고 노력은
하는데, 직업상 노이로제 걸릴 지경으로 이런 경우가 많아서 사실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에
요.
그녀는 거의 울먹일 듯이 말했다. 그녀의 마음을 이미 읽고 있던 나로서는 재빨리 분위기를
바꿔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 이해해요. 앞으로 미경 씨와 만날 약속을 했다가 미경 씨가 늦어지면, 마음만은 같이 있
는 것으로 생각할게요.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약속이라는 게 서로에게 즐거움이고 설레임
이어야지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작용한다면 미경 씨와 가까워지려는 나로서는 오히려
부담만 주는 게 아닐까요? 한 마디로 미경 씨의 직업적 입장을 십분 배려하고, 혹시 기다
리게 되는 시간을 유용하게 쓰도록 내가 노력하면 되죠.
- 고마워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군요.
- 자, 우리 어디로 갈까요. 가까운 곳이 어때요. '남산 타워' 가봤어요?
- 그 아래에서 가까운 곳에 근무하고 있으니 당연히 가봤죠. 하지만, 오빠랑 간 것은 아니
니 오빠가 원한다면 같이 가고 싶군요.
- 좀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으면 얘기해 봐요. 내가 너무 일방적으로 말한 거 같은데.
- 오늘은 저도 남산 타워가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미경 씨 점심은 먹었어요? 어쩌다 난, 아직 안 먹었는데.
- 저도 아직...
- 그럼, 식사는 ‘타워 전망대’ 에서 하기로 하고 우선 햄버거 한 개씩만 먹죠.
- 그래요.
그녀와 나는 햄버거 하나씩으로 요기를 한 다음, 서울역에서 4 호선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
장을 가 회현역에서 내려서 남산을 걸어 올랐다. 택시를 탈 수도 있겠으나 회현역에서 남산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그녀와 걷는 남산의 오후가 즐거울 거라는 생각으로
그녀와의 데이트를 이끌어 갔다. 회현역에서 내려 서울 예술 전문대학 가는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 길이 가파르고 힘들죠. 구두도 하이힐인데.
- 괜찮아요. 높은 구두가 오르막 길을 걸을 때에는 오히려 편해요. 이따가 내려갈 때가 문
제인데, 졸업한 학교가 워낙 산처럼 올라가는 지형이어서 오르막 길을 많이 다녀봤기 때문
에 별 문제 없어요.
소나무는 그대로였지만, 단풍은 모두 지고 낙엽은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흩날렸다. 작
년 가을의 낙엽은 내게 우울과 상념의 것이었으나 지금의 낙엽은 새로운 생명의 준비로 느
껴졌다.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해에 독서실에서 수험공부를 끝내고 나와 '청파 초등학교'
뒷담길을 오르면서 본 나목은 내게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었지만, 오늘의 저 빈 가지들은 내년의
새 생명을 위한 준비로 보였다. ( 계속 )
2011. 7. 17
November Rain
Guns N' Roses
When I look into your eyes I can see a love restrained. But darlin when I hold you Don't you know I feel the same.
그대의 눈을 들여다 보면 억눌린 사랑을 느껴요 하지만, 그대여 내가 그댈 안고 있노라면 나 역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나요.
Cause nothin lasts forever, And we both know hearts can change. And it's hard to hold a candle, In the cold November rain.
그 무엇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기에, 우리들의 마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리고 차디찬 11월의 빗속에서 촛불을 지키기가 너무도 힘겨워요.
We've been through this such a long long time, Just tryin to kill the pain.
단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쓰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우리는 함께 해왔죠.
But lovers always come And lovers always go And no one's reallly sure who's lettin go today, Walking away.
하지만, 연인들은 언제나처럼 함께 하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죠 그리고 아무도 오늘 누군가를 떠나 보내야 하는 지도 아는 사람이 없어요.
If we could take the time to lay it on the line. I could rest my head, Just knowin that you were mine, All mine. So if you want to love me, Then darlin don't refrain. Or I'll just end up walkin, In the cold November rain.
만일 우리가 시간을 가지고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를 할 때면 저는 휴식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이 저의 연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예요. 저의 전부가 된다면 말이죠. 그러니 그대가 절 사랑하길 원한다면 그대여 참으려 하지 말아요. 그렇지 않으면, 전 차디찬 11월의 빗속에서 걸으며 끝낼 거예요.
Do you need some time on your own. Do you need some time all alone. Everybody needs some time on their own. Don't you know you need some time all alone.
그대만의 시간이 필요하세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세요? 모두가 자신들만의 시간을 갖길 바라죠. 그대도 그대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요?
I know it's hard to keep an open heart. When even friends seem out to harm you. But if you could heal a broken heart. Wouldn't time be out to charm you.
마음을 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전 알아요. 심지어 친구들조차 당신에게 상처를 준다면 말이죠. 하지만, 만일 당신이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할 수 있다면 세월이 감쪽하게 해 주지 않을까요
Sometime I need some time on my own. Sometime I need some time all alone. Everybody needs some time on their own. Don't you know you need some time all alone.
때로는 나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때로는 나도 홀로 있을 시간이 필요해요. 모두가 자기 자신들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대도 그대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요?
And when your fears subside, And shadows still remain. I know that you can love me, When there's no one left to blame. So never mind the darkness, We still can find a way. Cause nothin lasts forever, Even cold November rain.
그리고, 당신의 두려움이 잠잠해지고, 그람자가 아직 남아 있을 때, 그대가 날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전 알아요. 그 누구도 원망할 사람이 없어질 때면 말이죠. 그러니 어둠을 가슴속에 담아두지 마세요, 우리는 길을 찾을 수 있어요. 그 무엇도 영원히 있지 않다해도, 심지어 차디찬 11월의 비조차도 말이죠.
Don't ya think that you need somebody. Don't ya think that you need someone. Everybody needs somebody. You're not the only one.
당신은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당신은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냐구요. 누구나 누군가를 필요로 하죠. 당신만이 그러는 것이 아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