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자넬 불러본 지도 몇 해 지난 듯 싶다. 지금쯤 바티칸의 어느 성전 아래서 묵상하고 있을 자네를 상상해보니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도 드는군.
5, 6년 전이었지 아마, 자네가 신품 성사라는 것을 받고 정식 수도사가 되던 날, 다른 친구들과 부평의 수도원에서 자네를 보았을 때, 나는 그제서야 자네가 무언가를 이루어 가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어.
처음 대학을 졸업하고 2대 독자인 자네가 수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자네 부모님과 합세한 우리들이 자네를 설득한다고 무진 용을 썼던 일이 생각나는군. 심지어는 자네가 짧은 휴가라는 것을 나왔을 때, 억지로 이태원과 신림동의 뒷골목을 끌고 다니면서 소위 파계의 음모를 진행시키기도 했었지. 모두 치기였다는 걸 부인하지 않겠네. 막상 자네가 정식 수사가 되었을 때 우린 그때의 용렬을 추억으로 생각하며 함께 웃지 않았던가!
돌이켜 보면 이미 고교 시절부터 자네의 길은 정해졌었던 듯 싶군. 도서관에서 잠시 몰려나와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소록도 이야길 했었던 걸 기억하나? 다시 도서실에 들어가서 자릴 잡았을 때, 자넨 한동안 자리에 없었네. 참고서를 볼 요량으로 내가 3층의 열람실에 들렀을 때, 자넨 그곳에서 독서에 열중하고 있었지. 그 책 제목이 ‘죄라면 문둥이로소이다’ 였지 아마. 어찌 보면 대단치도 않은 일을 내가 여지껏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날 이후로 내가 자넬 다시 보게 되었기 때문이야.
시험을 목전에 두고 눈코 뜰 시간 없을 때, 잠깐 쉬는 시간에 지나가는 말처럼 나눈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고 독서에 열중하는 자네의 모습은 내겐 감동 그 자체였다네. 자네 별명이 ‘모모’가 된 것은 그 때 내가 지어준 것임을 기억하고 있는지......
대학 시절, 우린 남들이 그러는 것처럼 연말에 자선 바자회 비슷한 걸하고 그 돈으로 영종도에 있는 보육원엘 몇 차례 가기도 했었지. 물론 그 행사들이 무의미했었다는 건 아니야. 들고 간 물건은 보잘 것 없었지만 그들과 함께 공을 차고 보육원의 유리창도 깨뜨리면서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물건이 아니고 마음임을,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감동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단지 가족의 안위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평범한 가장으로 추락해 버린 듯 싶어.
자네도 익히 알고 있겠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최악의 경제 위기에 몰려 있네. 경술국치에 맞먹을 IMF 경제 신탁통치를 받게 되었지. 자청한 것이기에 앞으로 한 두해는 어쩔 수 없다고 보아야겠지. 이 시점에서 누굴 꼬집어 너 때문이라고 탓한다고 돌려질 상황도 아니야.이제부터 얼마나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네. 어찌 보면 가장 민감한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자의 한사람이 되어 버린 나 자신이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네.
진지하면서도 편안한 자네가 보고 싶군. 여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밤새도록 수다라도 떨고 싶어. 자네라면 다 받아주고 포용해 줄 수 있을 것 같네. 불혹이 머지 않은 나이에 자네같은 친구를 갖게 해준 하느님에게 새삼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군.
오늘 서울이 영하 11도라는 군. 하지만 정작 추운 것은 영하의 온도가 아니라네. 자네가 혹독한 예비 수사 시절을 지낸 것처럼 우리 국민들이 이제부터 IMF라는 혹독한 동장군이 몰고 올 상상하기 힘든 추위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지.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 민족이 슬기롭게 이 난국을 극복할 것임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네. 비록 먼 곳에 있지만 자네가 우리 국민의 일원으로 위기 극복을 위해 기도하며 또 노력해 줄 것을 믿는 것처럼......
자네의 건강과 정진을 기원하며 이만 마치려네. 다시 만나는 날, 맑은 소주 한잔으로 오늘을 추억할 수 있기를 함께 소망하고 싶군.
자네 친구가...